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무한도전 뉴욕 특집을 보며

 무한도전 뉴욕 특집 1편이 나가자 미국 물 좀 먹고 와서 영어강사 한다는 사람이 거친 어조로 그들을 씹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그 주장의 개요는 영어도 못하면서 왜 미국에는 가서 나라 망신을 시키느냐는 거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의견을 놓고 갑론을박을 했고 광고 지면 이외의 빈칸을 채워야 하는, 늘 가쉽거리에 목 마른 기자들이 여기에 밥숟가락 얹어 놓으며 가쉽거리가 되다가 언제나처럼, 언제그랬냐는 듯이 그 논쟁은 잊혀져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한번으로 끝난, 끝날 에피소드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어리석은 국민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소위 좀 배웠네 하는 자들 일부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무엇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건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먼저 나는 왜 그 영어강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지, 무한도전을 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

 문득 명박정권의 정권인수위에서 활약하셨다는 명문 여자대학교 총장님의 "오륀지" 사건이 생각난다. 오렌지라고 하니 미국 사람들이 알아듣지못하고 오륀지로 말해야 미국 사람들이 알아듣더라는 이 양반이나 좋은 영어 발음을 위해 어린 자식의 혀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는 부모나 산수 문제 푸는 데 국어 사전 펴들고 앉아 있는 꼴이다.

 이미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 사용 인구가 영어권 국가의 영어 사용자보다 더 많아졌으며, 비 영어권 사람이 정통 영어와는 다르게 말하고 이런 언어경향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정통' 영어를 쓰도록 요구만 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어권 국가에서 이제 그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신문에서 읽은 기억에 의존해서 하는 말이라 비록 이 의견이 영국 내 소수의견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거론된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없다. 갑갑하면 직접 찾아봐라. 여튼 중요한 것은 심지어 영어 종주국에서도 "내가 원조니 나 하는대로 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쓴다면 많이 사용되는 방향으로 따라가야 되지 않겠냐는 성찰을 보이는데 왜 한국의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은 오리지널 정통에 그다지도 집착하느냔 말이다. 유연성 없이 딱 배운대로 시키는 대로 하려고 드는 것을 티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언어의 기본적인 역활은 의사소통이다.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으면 되는 거지 왜 문법 생각하고 발음 생각하면서 꼬고 비틀어야 한단 말인가? 아! 하긴 그래야 영어 가르쳐 밥 먹고 살지. 쉬우면 누가 학원 오려고 하겠어?

 그리고 무한도전의 행태가 창피하다고 했는데 왜 창피할까? 미국인들에게 무시당해서? 자, 그럼 한국을 여행온 미국인이 한국말을 모른다고 당신들은 무시할 것인가? 아니다. 아마 당신들은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본토 발음으로 친철히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마 흔히들 말하는 동남아시아인이 어설픈 한국어로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아마 당신은 십중팔구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고 생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미국인이 고향에서는 직장도 잡지 못하고 반백수로 빈둥거리다 한국에 원어민 강사가 되기 위해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동남아 사람이 알고보니 한국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해당 국가의 고위 차관이라면? 그리고 그 차관이 어느 한국인이게 불법체류 노동자 취급을 당해 불쾌했다고 하자.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 어디가도 매너 없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못난 인간은 있는 것이다.

나는 피자를 집어던지던 맥잡의 미국인에게 무시당한 것 보다는 거리에서 무한도전 맴버가 나 영어 잘 못한다고 하니까 괜찮다, 나도 한국말 모른다라고 대답한 그 미국인을 더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들로써 미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뭐, 그건 그렇고 본토 원어민도 괜찮다는데 왜 원어민 강사도 아닌 학원 선생이 영어 못한다고 떽떽 거리나? 하는 짓이 영어 못한다고 사람 무시하고 피자 집어 던지던 맥잡 짓과 똑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창피해 해야하는가?  나는 그것이 감히 사대주의라고 본다. 명이 무너지자 유학의 정통은 자신들이 이었다며 스스로를 소중화로 일컫으며 몰락한 명황실을 위한 제사까지 지냈던 골수 사대주의자들! 아마 원어민이 오렌지라고 말하면 검지 손가락 좌우로 까딱거리며 오륀지라고 고쳐주면서 이젠 정통 영어의 정통은 소아메리카가 잇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사는 한국인 중 대부분이 인니어를 배우는데 영어만큼 극성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설프나마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 나라 말을 하고 또 이곳 사람들도 눈치껏 알아서 응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 현지인들을 무시한다면 잘못된 것이겠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서로 눈치껏 의사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수는 있다. 이곳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그걸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같은데 미국이라고 다르겠나? 미국에서도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사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는 걸 보면 마찬가지이다. 근데 왜 그렇게 팍팍하게 구는 거냐? 아! 하긴 쉬운거고 쉽게 갈 수 있는 거라면 누가 돈 내고 배우겠어? 어렵고 힘든 거라야 돈 내고 배우지.

 제발 오리지널, 정통 이딴 걸로 사람 현혹하지 말자. 꼭 그렇게 맞춰 살아야 하나? 공부 많이하고 어느 한 쪽으로 잘하시는 분들 잘났고 잘하는 건 알겠는데, 모두가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않느냐. 그래야 그쪽도 할 일이 있는 것이고. 정말 그런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 소용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잘하고 매끄럽게 잘 할거면 왜 미국까지 가서 무한도전 찍나? 그냥 한국에서 찍지. 잘못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도전이 되는 거고, 그래서 재미가 있는 거다. 개그맨이 말장난으로 웃기는 데 그걸 하지말라면 도대체 뭘 하란 건가? 정극 드라마라도 찍으란 거냔 말이다.

추신. 뉴욕 한국 음식 특집 마지막에 비틀즈를 흉내낸 공연은 올해 무한도전의 백미 중에 백미라고 난 생각한다. 자신에게 겨눠진 비난마저도 비틀어 웃음의 소재로 삼는 이들은 진정한 코미디언이다! 나도 이제 무도빠인득.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웰리엄 캘빈의 생각의 탄생을 펴며

 기왕 뇌와 마음 쪽으로 달린 김에 이번에 꺼내 든 책은 같은 시리즈 도서 중 하나인 웰리엄 캘빈의 생각의 탄생이었다. 어? 그런데 책 제본 상태가 좀 이상하네? 왜 새 책 답지 않게 헐겁지? 혹시 본 책인가? 책장을 뒤져보니 내용이 생소하다. 책 상태가 좀... 이네 투털거리며 서문부터 읽어 나갔다. 새로운 내용인듯... 하다가 마음의 진화를 읽고 쓴 지난 글에 다윈주의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 기억이 날 것이다. 그 글을 쓸 때 다윈주의에 대해 언급한 다른 책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렇다! 난 이미 이 책을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아놔... 그러고 보니 책 중간에 지능의 토대로서의 통사론을 다루면서 저자가 제안한 언어기계 그림이 눈에 익다. 지능이 언어와 밀접하다는 것과 번역기는 인지학자나 신경 과학작가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떠오른다!

 전에 읽었던 감흥을 되살리며 책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긴 하지만, 이미 읽은 책을 '너 누구?' 이러는 건 좀 심하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전장을 바꾸자

예전에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탐독할 때 비즈니스를 전쟁에 비유하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싸움을 하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블루 오션도 사실 이 말이 뜻하는 바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죠.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쓰시는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 요구를 하고 싶습니다. 잠깐 지금의 경주 트랙에서 벗어나 이 경주 전체를 한번 경기장 위에서 내려다 봐 주십시요. 트랙에서는 결승점 밖에 안보이고 거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 밖에 생각할 수 없지만,한 걸음 물러날 경우 우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한국의 교육 현실을 살펴볼까요? 아니, 그 보다 왜 교육을 해야 하는지부터 짚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왜 부모님은 자녀를 교육 시키시나요?

과거 로마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7가지 과목은
라틴어와 그리스어-언어.
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적절히 표현하는 기능을 배우는 수사학(레토릭).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터득하기 위한 변증학.
그리고 산수, 기하, 역사, 지리였다.
이 일곱 과목을 '아르테스 리베랄레스'라고 불렀는데 직역하면 '일반학과'이고, 의역하면  인간이 제 구실을 하는 데 필요한 '교양학과'가 된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어의 '아르테 리베랄레', 영어의 '리버럴 아츠'로 남아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중).

 이는 교육이 기본적으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 요건을 갖추게 해주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에게 교육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앞에서 말한 정도의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교육열은 유별나도 한참 유별납니다. 혹자들은 이런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오바마가 몇번이나 한국의 교육열을 인용했다는 제도 언론의 낯간지러운 기사를 보면서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버리고 가는 비정한 한국 고교 교실의 현실을 알고 나서도 그들이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할지 의문스럽습니다.
 스스로도 광풍이라고 칭하는 한국의 이런 교육열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것은 ‘과거’에 장원급제 함으로써 입신양명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유전이 공부를 출세의 지름길,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6, 70년대 ‘고시’ 합격자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과거에 장원급제 한 유생에 대한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고, 예비고사, 본고사 시절 국내 최고 명문대 수석 합격자나 학력고사 전국 수석에 대한 사회적 관심 역시 언론의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난한 가정에서 역경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는 둥,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법관, 외교관이 되어 나라에 이바지 하겠다는 미담식 기사는 어디서 많이 듣던 옛날 이야기 같이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반상의 구별이라는 전근대적인 신분제도는 없어졌으나 사회적 인식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한 한국 근대사회는 이제 누구나 학생이 되어 공부할 수 있고 입신양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신문에서 그런 성공사례들을 연일 다루고 있으니 바야흐로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은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처럼 견고한 교육열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와중에 시간이 흘러 오늘도 한국에서는 매년 60만명 이상의 고3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칭 서울 소재 명문대에 입학하는 3만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55만 명은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IMF를 거치면서 반강제적으로 세계화된 한국 사회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행동들을 기업들의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으로 지지해 버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개발 독재 시절부터 한국은 사회보장이 대단히 미약했고 그 역활을 기업의 평생고용을 통해 해결해온 경향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까지 그것을 기업에게 지고 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기업에게 평생고용의 짐을 내려놓게 했다면 그 짐을 국가가 사회보호 장치를 만들어 흡수하고, 그럼으로써 성장잠재력을 보호해야 하는데 멀쩡한 강 파는데만 관심있는 작금의 한국 정부는 그럴 의사가 별로 없는 듯이 보입니다. 찬바람 부는 콩크리트 보와 둑 위에서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맨몸으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더 비관적으로 말한다면 2009년 기준 현 세대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안정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급여나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숫자는 그 해의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 인원과 그 보다 소수의 전문직종 종사자, 그리고 부를 대물림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준의 자산을 보유한 부모의 자녀 숫자를 합친, 많이 쳐줘봐야 3만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 95%의 아이들은요?
 이미 많은 20대가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 문제의 중심에 놓인채 88만원 세대로 비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것은 개선될 기미없이 누적되어 갈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싸워도 전체의 95%를 '루저'로 만들어 버리는 전쟁터가 바로 한국의 교육이고 한국의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아이들을 싸우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아이를 손에 안아본적도 없는 초보아빠의 건방진 자만일지는 모르지만, 전 제 아이를 그 5%안에 넣을 자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왓슨이었나요? 왜, 자기 제자와 바람피는 바람에 매장당한 비운의 심리학자-아놔~ 왜 이런 것만 생각이 나지?!!- 그가그랬다죠. 나에게 아기 열명만 준다면 원하는대로 과학자, 경찰, 범죄자로 만들어 내겠다고... 왓슷만큼 건방지게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 아이만큼은 게임의 룰이 그렇다면 그 게임의 룰에 따라 그렇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그 5%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전개되는 전쟁입니다. 과연 그런 전쟁에서 이겨본들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글 앞머리에서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싸우란 말을 인용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95%가 루저가 되는 전쟁이 아니라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전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이상적이라면 적어도 95%가 루저는 안되는 전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전제, 전략,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장의 이동,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과거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과 연구는 철학자의 몫이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들 철학자들의 이러한 성찰은 나름 진지했으나, 세상이 불, 물,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만큼이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들이 가진 관찰과 지식의 한계 속에서 내린 결론이나 선언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했던 사유와 성찰 과정에 있을 것이다. 재료가 좋지 않았기에 옹기를 만들었을 뿐, 그 옹기를 빗고 구운 기술만큼은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나 할까?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 좋은 흙을 가졌어도 그 옹기만큼 변변한 그릇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나일지도 모른다. 선대의 영광에 비견해 지금의 나를 자학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위대한 그들을 못난 오만으로 비웃지는 말자는 것이지.

 사실 철학에 대한 내 태도는 거기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철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제도교육의 영향으로 다른 분야 보다 지식보다는 사고의 전개 틀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진 철학을 만만히 보는 경향과 이미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목적의식에 오염됨으로써 눈이 멀어버린 맹목적인 이즘의 횡포를 접하면서 '근거없는 사변과 순환론의 연속인 철학' 에 대해 일종의 불신마저 품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을 들어보고 생각해볼 기회는 그리 갖지 못했다.
"도대체 철학자가 하는 게 뭐야?"

 물론, 내가 대니얼 데닛이 쓴 마음의 진화라는 책에서 그런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이언스 마스터즈 시리즈의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에서 대니얼 데닛은 눈에 띄는 지식이나 결론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전형적인 철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이랄까? 자, 이런 문제가 있고 내가 여기까지 한번 생각해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뭐 이런 식이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저자가 철학자임을 알았을 때,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마음을 주제로 다룬다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대부터 마음은 철학자의 영역이었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마 심리학이 마음이라는 영역에 깃발을 꼿음으로써 더 이상 철학자가 여기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신한 것은 참신한 것이고 일단 철학은 자꾸 나에게 생각하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에 좀 귀찮다... 책 읽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집어던질까 말까 망설이면서 계속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철학자가 실험과 과학적 방법에 매달려 개미처럼 일하는 과학자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과 (과학만큼이나 엄밀한) 논리성으로 무장한 채 굼뜬 과학자들 머리 위로 통통 뛰어오르는 메뚜기처럼 느껴졌다. 과학이 증명하는 존재라면 철학은 예견하고 가설하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하긴 초창기 유럽 심리학자들이 다시금 재조명 받는 것도 그들의 그런 철학적 통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토대로 철학자가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것을 목격한 것은 내게 대단히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몸에도 마음이 있고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보다 적은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기 위한 진화론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저자의 가설은 대단히 인상깊은 주장이었다. 거짓말을 할 때 진땀을 흘리거나 무대에 나갔을 때 떨리는 등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는 달리 몸이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이 아닌 몸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잘못하면 프로이드의 의식 무의식이 떠올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저자는 다윈의 생물>스키너의 생물>포퍼의 생물 3단계로 나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되씹으며 나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오덕스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3지안이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이 났다. 3개의 눈을 가진 이 종족은 죽지 않는 불사의 종족으로 원래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살았다고 한다. 안죽다보니 너무 오래 살아 인격이 망가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 종족은 멸망하게 되는데, 히로인 격인 3지안은 자신의 원래 인격을 봉인하고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냄으로써 세월의 풍상과 종족의 멸망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자신을 지켜낸다. 가끔 원래 인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인격은 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새로이 세상을 경험한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인격이 기존의 인격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지배하려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원인이나 방법, 결과물이 모두 틀리긴 하지만... 응? 그런데 왜 3지안 이야기는 꺼냈대?

어찌되었건 마음 역시 진화의 산물이고 적자생존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이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촘스키가 인간의 언어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아마 인간의 마음 역시 선천적으로 타고 난 생리적 기반 위에 타고난 것이고 이것이 적자생존의 경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상상해본다면 심리유형론자가 이야기 하는 기질이나 성격유형과도 맥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많은 생각꺼리를 주기는 하지만, 뭐랄까... 송진가루 한번 손에 묻혀본 적이 없는 내가 암벽등반 코스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암벽이 멋지긴 한데 말이지.

사족 하나. 다윈의 진화론은 그냥 이런 게 있다가 아니라 정말 꼼꼼히 뜯어보아야 할 대상인 것 같다. 내가 무지해서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다윈의 진화론은 저평가 받았다는 느낌이 요즘  책을 읽다 보면 진화론은 그냥 환경에 적응한 놈이 살아 남은 거래요라는 주장 그 이상의 것인 것 같다. 근데 그 이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ㅡㅡㅋ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구글 웨이브 시범 서비스 참여


지금 사용하는 구글 메일도 시범서비스가 시작되는 걸 알자마자 바로 초청장을 구해서 여태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구글에서 새로운 서비스 '웨이브'를 시범서비스 중이란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신청을 했습니다.
안되는 영어로 서너줄 써서 보냈는데도 오늘 사용 허가 메일이 왔군요. 사실 서비스의 정확한 개념이나 사용법 등을 아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시범 서비스 중이라 영문 서비스로만 제공되어 별 기대도 않했지만 초청장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접속했습니다.

근데 이 뭥미...? 구글의 이메일과 노트, 쇼셜네트웍 서비스등이 혼재된 협업도구라는 정도의 개념만 가지고 있었는데... 음...
일단 닥치고 검색 관련자료를 들쑤셔 보면서 개념부터 잡아야겠습니다.

그간 구글의 행보는 여러가지로 제게 흥미를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이미 주가 총액이 IBM을 넘어선 자본주의의 총아인 주제에 '악마가 되지 말자'는 기업 구호부터해서 미국에서 경매로 나온 주파수를 사들여 무료 인터넷으로 공개하겠다는 선언으로 통화료 떨어먹는 재미에 빠져있던 이동통신회사를 엿먹이려 든 것도 그렇고 ... 물론 이 시도는 좌절되었습니다만. 가치를 사용자가 소유하게끔 함으로써 돈을 번 기존 업체들과는 달리 가치의 전환-value shift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이 보이는 행보는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영문 원제 The Age of Access)에서 주장하는 바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역시 현재까지 가장 큰 수익 모델은 광고이고 이 광고는 사용자에게 소유를 격려하는 것이란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압도한다고 해도 결국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근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요즘 트위터가 인기라죠? 한국에선 철수했지만 페이스 북도 세계적으론 인기인가 봅니다. 여기 이동통신회사의 요금제 중에 페이스북 접속에 한해서는 아주 싼 접속료를 부과하는 요금 상품도 나왔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메일과 메신저 채팅에서 딱 멈춰있던 저의 인터넷 사용 양태는 "그 딴 거 필요없다. 이 블로거 하나 글쓰는 것도 귀찮아 죽겠구만." 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좀 바꿀 때가 오지 않았나 싶군요. 그렇다고 부지런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의 게으름을 상쇄시켜줄 환경이 점차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구글의 각종 웹기반 서비스입니다.
사실 웹으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구글 노트나 그룹스 등은 제게 그 전조를 보여주기는 했습니다만 몇가지 이유(결국은 귀차니즘으로 통합되긴 합니다만...)로 그간 사용을 유보했지만 이번 웨이브 참여를 기회로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참, 내년에 구글에서 개발한 구글 크롬을 os로 한 넷북이 나온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아마 이 넷북은 구글이 제시하는 이런 웹기반 사용환경과 찰떡궁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PSP나 DS가 아닌 넷북을 사줘야 한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이죠. 그러고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내년 필수 지름 품목이 하나 선정 되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사죠?

몇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먼저 용돈을 안쓰고 모아서 지른다... 허락 안받고 샀다고 그나마 한달에 십만원 내외로 아내(라고 쓰고 갑이라고 읽는다)가 결제하던 용돈이 결제 정지되는 부작용이 있을듯 하군요.
둘. 이 글을 보여주면서 넷북의 필요성을 아내(라고 쓰고 아내님이라고 읽는다)에게 설득해서 사달라고 한다. 그 동안 ICT 잘 모르는 아내에게 생색내며 자행했던 각종 구박을 한방에 모두 되돌려 받게 될 듯 한데... 문제는 그러고도 사 준다는 보장은 없.... OTL
셋. 매출(?)을 조작(?)해 아내에게 전부 상납(?) 하지 않고..... 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따님 얼굴도 못보고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모험은 안하는 게...

근데 지금 블랙베리도 못지르고 있잖아? 안될꺼야 난 아마..... ㅠㅠ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남자의 자격 - 아내가 사라졌다를 보고

요즘 스마트 폰에 ‘꼿혀’ 관련 정보를 좀 찾아 다녔는데, 스마트 폰 사용하려다가 내가 스마트해져야겠다는 사용자의 푸념 아닌 푸념이 기억에 남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 KBS의 남자의 자격에서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주제로 출연자-당연히 남성-들이 가사 노동을 일일 체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전자레인지를 조작하지 못하거나 진공청소기의 손잡이를 길게 늘이는 것을 몰라 청소 내내 허리를 숙인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묘사되더군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좀 편해 보겠다고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것을 이용해 좀 편해 보려면 먼저 그것을 배워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습니다. 제가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에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이유가 아마 이런 학습에 대한 귀찮음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런 새로운 학습에 대한 요구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단지 일상의 편리를 제공하는 기계만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학습에 대한 요구는 우리 생활 전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즘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인 SNS의 대표주자 페이스 북입니다. 한국에선 랜챗도 유행하나 보더군요. SNS, 페이스 북, 랜챗 등등 부모님 입장에선 듣도 보도 못한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유행이라니 이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여하튼,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는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나고 있고 그 배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예전처럼 노인이 현인으로 대접받는 시대는 지났나 봅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학습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 피곤합니다.

자, 그런데 지금도 이 정도인데 미래를 살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지식은 이 아이들에겐 무용할지도 모릅니다.
교육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한 지식의 축적으로써의 교육은 그다지 매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의 수명주기가 짧은데다가 그 양도 너무 방대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교육의 목적도 이것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물고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참 쉽지 않은 주제이긴 합니다.◆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휴먼 브레인

제가 아내에게 심심치 않게 받는 압박 중 하나가 사 놓은 책은 언제 다 읽을 거냐는 겁니다. 간간이 지름신이 발동할 때마다 저를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이기는 한데...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달라서 그렇지 책 읽기라면 아내 역시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라 이번에 아내가 읽을 책을 구매하면서 거기에 살짝 그간 제가 리스트업해두었던 도서 목록을 얹었습니다. 아주 살짝 얹는다고 얹었는데도 아내가 산 책 보다 3배나 많아지는 바람에 아마 책이 도착하면 또 당분간은 귀 닫고 눈 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그 전에 블랙베리를 사야 할텐데... 먼산...

여튼 그 책 도착하기 전에 전에 사놓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예전에 사 놓았던 책을 요즘 광속으로 읽는 중인데 그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책 중 하나가 바로 수잔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사이언스마스터 6번째 책인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공부를 계속했다면 생리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제게는 관심이 있었던 영역이라 그런지 빨리 읽혀지더군요. 게다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뇌기반 학습이라 당면 과제와도 관련되는 이야기고 해서 뇌 관련 책을 좀 볼 필요도 있었구요.

이 책은 상향적 접근법과 하향적 접근법을 차례로 구사하며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미개척인 상태로 놓은 영역도 많고, 알려진 지식 마저도 종종 뒤집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뇌 연구 결과는 적어도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뇌의 기능을 특정 뇌 부위별로 배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흔히들 알려져 있듯이 두뇌 중 어느 부위는 생각하는 곳, 또 어느 부위는 보는 곳, 움직이는 곳 이런 식으로 어떤 능력과 어떤 뇌 부위가 일대일로 매칭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기능에서나 여러 뇌 부위들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외부 세계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뇌의 여러 부위가 상호 조합됨으로써 하나의 기능이 구현되기 때문인지,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기능이 사실은 여러 기능의 조합이기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우리 인체의 다른 기관들이-심장이 피를 순환하고 신장이 피를 걸러주는 것처럼 고유의 기능이 있는 것과는 달리 뇌의 각 부위는 하나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현대 뇌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시적으로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용하고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대한 주제에서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하나 하더군요. 바로 뇌 내 정보 전달이 화학 물질에 좌우되는 특성 때문에 뇌와 동등한 컴퓨터를 만드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저 역시 왜 신경정보 전달에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의 존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아주 좋은 설명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만약 신경세포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전기적으로만 신호가 전달되면 더 단순한 구조로 효율적이고 빠르게 신호를 전달했을지도 모르지만, 뇌는 이런 단순함과 효율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조합의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다양성과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 인간의 진화 역시 특정 환경에 대한 최적화 보다는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기에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될 수 있었고 현재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회로도와 정해진 알고리즘에 근거하는 현대 컴퓨터 기술이 이런 다양성과 융통성,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창발성을 갖추기는 어렵기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저도 동감하게 됩니다. 아무도 계산 빠르게 하는 컴퓨터는 상상해도 시를 짓는 컴퓨터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뇌의 발달과 기능 구성에 있어서 흥미로웠던 것은 출생 전 급격하게 증가한 뇌 세포들이 출생 이후 연결을 시작하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각인처럼 대부부의 동물은 학습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으며 아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밍 된 행동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탁월한 융통성으로 인해 학습에 있어서 민감한 시기가 있긴 해도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갖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신체 기능에 있어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기가 여전히 유효한듯 합니다.
아기 때 사소한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2주간 한쪽 눈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이 그 눈을 실명한 사례가 그것인데, 어른의 경우라면 이미 신경의 연결이 확립되어 그런 처치가 문제가 없었겠지만 출생 직후의 아기는 아직 눈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 형성이 수립되지 않았고 바로 그 때가 신경 연결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 능력에서부터 고차원적인 기억에 이르기까지 신경망의 연결이 대단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낮은 차원의 기본적인 능력일 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이고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 초기 자녀에 대한 양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현대의 뇌 연구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상향식 연구와 하향식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으나 아직 두 연구결과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뇌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독일 서쪽에서 진공하는 연합군과 동쪽에서 진공하고 있는 소련군처럼 언젠가는 엘바강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 엘바강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원리가 살아 숨쉬는 뇌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유혹하지 않을까 합니다.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다시 시작을 준비하며

마지막 글을 올린 것이 2007년 하반기, 그리고 나서 2년이 지났내요.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생명유지장치를 단 말기암 환자 처럼 고통스럽게 겨우겨우 유지하던 일 속에 지쳐가다가 포위당해서 몰려 오는 적군 앞에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란 심정으로 역습을 시도하는 게티스버그의 북군처럼 정말 용기를 내어 그간 해오던 일을 접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2008년. 믿어주시는 많은 분들의 응원 덕에 겨우 역습은 성공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동안 정말 이 블로그로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네요.

어차피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넷 상에 자신을 개방하는데 능숙하지 못한 편이라 잘 안될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보다는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에 너무 긴장하는 편이죠. 그러니 쉽게 지치는 것이고.

그래서 블로그 성격을 좀 바꿀려고 해요.
혼자서 너무 긴장하고 뻣뻣하게 구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구요. 여튼,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좀 더 여러가지 주제로 소소하게 다시 블로깅을 다시 시작할려고 해요.

2007년 11월 8일 목요일

바닥나는 밑천

자녀의 성공을 위해 라는 제목의 일련의 글을 그리 깊지 않은 지식으로도 그 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써 놓은 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바닥이 드러나니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쥐어짜내느라 점점 글을 올리는 주기가 늘어나기 시작하는군요.

그 사이에 넋두리 같은 잡설이나 하나 풀어 놓아 봅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면서 한가지 흥미있는 주제가 생겼습니다. 아직 사례수가 충분치 않아 충분한 사례 축적과 함께 통계적 검증 작업이 필요하지만 일단 첫번째 가설은 "해외에서 성장한 한인 어린이, 청소년은 K-WISC3의 언어성 지능이 떨어진다" 입니다. K-WISC3 자체가 한국어판으로 재표준화 된 검사이므로 언어성 지능은 한국어 사용 능력을 전제로 한 지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작성 지능에 비해 아무래도 해외에서 성장한 한인 자녀에게는 불리할 수 있으며 지수 점수 상으로는 실제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문제는 한국어에 기반한 검사였기에 본신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한국어 사용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은 거기까지 밖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가설이 검증되면 당연히 두가지로 분기가 되겠죠

먼저 가설이 틀렸다. 즉,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인니에서 자란 아이들 간의 모국어 사용 능력의 차이가 없다로 드러나면 조금 심심해지긴 할 것 같습니다. 경험적으로 보고되는 이곳 한국 아이들의 행동 특징 -보통 인니 거주 한인 학부모님들은 여기서 성장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성장한 아이들에 비해 '느리다'고 평가합니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 가설을 보다 세분화시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니 거주 년수와 어느 연령대일 때 인니에서 성장했느냐는 양적인 접근과 함께 어떤 훈육 환경에서 성장하였느냐는 질적인 접근이 바로 그것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거주 년수와 연령대도 중요하지만 초기 언어 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랄 수 있는 3~7세 무렵의 질적인 환경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우선 충분한 사례축적을 통한 첫번째 가설 검증 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튼, 양적인 특성으로 나눈 그룹에서 어느 정도의 언어성 지능의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그 차이는 실질적인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이쪽에서는 두번째 분기점이 되겠군요.

그 다음, 만약 가설이 옳았다. 즉,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인니에서 자란 아이들 간의 모국어 사용 능력에 차이가 있다고 드러난다면 조금 더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가설이 틀렸을 때 따르는 후속 검증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 보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언어성 지능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인니가 갖는 환경적 특성-한국어 환경의 결핍-과 격리된 이중언어 환경에 의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어 환경이란 시각적 청각적 한국어 자극에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길 거리만 나서도 한국어 간판에 한국어 소리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그러나 인니에서는 그렇지가 않죠. 이 보이지 않는 환경의 효과는 마치 공기의 소중함과도 같습니다.

격리된 이중언어 환경이란 쉽게 말해 집에서는 한국어를 학교에서는 영어를, 친구들과는 인니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양한 언어 학습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이중언어환경은 모든 장면에서 두가지 이상의 언어가 적절하게 사용되는 환경을 의미하므로 격리된 이중언어환경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더 많은 물질적, 정신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한국어 환경의 결핍은 비교적 일정하게 인니에서 성장한 한국 아이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반면, 격리된 이중언어환경은 개인별로 상이하며 그 영향도 다양할 것으로 보아집니다. 따라서 이를 집단별로 나누고 그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이 이쪽의 두번째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런 한국어 환경의 결핍를 어떻게 상쇄하고 모국어 사용 능력을 강화 시켜 줄 것인가하는 대안이 이쪽 가지의 열매가 되겠군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만 뭐 아직은 러프한 아이디어 수준일 뿐입니다. 이미 누군가가 연구해 보았을 일을, 알고 있는 지식일지도 모르는데 헛발질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어찌되었던 나무 가지가 햋볕을 향해 뻗어 나가듯이 가설이 어느쪽 가지로 분기해 가던 최종적으로 뻗어나갈 방향은 언어 발달(환경의) 차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입니다.

식재료가 많다고 해서 적은 쪽 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가 자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의 양이 더 많다고 해서 반드시 자녀가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똑같은 식재료를 가지고서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듯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선택과 배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성장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어느정도 수준 이상의 교육적 기회가 두루 갖춰진 현대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당연히 양 보다는 질이 중요하겠지만 그 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 많은, 더 특별한 교육 기회일까요?

글쎄요...

당신의 생각은, 그리고 선택은 무엇입니까?

심리검사 결과의 이해 4

* 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K-WISCⅢ의 저작권은 Psychological Co에게 있으며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특수교육에게 있습니다. *


심리검사 결과의 이해 4

- 지능검사 편

지난 번에 자녀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3가지 심리검사를 제시했습니다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런 검사를 하는 목적입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녀의 특성을 알아보자는 목적으로 선정한 검사입니다. 즉 진단을 위한 것이지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며 자녀의 성공을 위해 심리검사 결과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심리검사 결과를 놓고 좋고 나쁨을 따지거나 일희일비하는 것이 애초의 심리검사 목적한 바가 아님을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자, 그럼 이렇게 심리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받아 보았습니다.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먼저 지능검사 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능을 지수로써 표현되는 IQ로만 이해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의 키가 그 사람의 성공을 예언해주지는 않듯이 단지 하나의 지수값으로서의 지능은 저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키 큰 사람은 무조건 잘 생긴 얼짱에 몸짱에 돈도 많고 집안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능지수 얼마에 대한 유혹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그래서 아예 지수 점수를 밝히는 것 보다 최우수, 우수, 보통이상, 보통, 보통 이하, 경계선, 지적결손과 같은 질적인 해석으로 결과를 제시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대표값인 지능 지수 그 보다는 전체 지능을 구성하는 각각의 하위 능력들이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지난 지능검사 소개 글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만 모든 지능 검사가 이런 정보들을 충분하게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연구 개발된 소수의 전문 지능검사만이 지능의 다양한 조망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와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체 지능과 관련 있고 지능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하위 능력들간의 분포 정도 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전체 지능을 구성하는 하위 지능들이 어떤 점수 분포 모양을 갖느냐 입니다.


그림 4-1. K-WISCⅢ 소검사 점수 그래프


위에 제시된 그림 4-1. K-WISCⅢ 소검사 점수 그래프는 바로 이런 분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각각의 소검사들은 특정한 단일 능력 또는 여러 단위 능력의 조합일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소검사와 함께 특정 능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림 4-1에 나타난 상식 소검사 점수는 피검사자의 실제 지식의 범위나 지적 호기심의 정도, 일상 세계에 대한 기민성 그리고 장기기억과 관련이 있는 관련이 있는 한편, 이해, 어휘, 공통성 소검사와 함께 피검자의 언어적 이해 능력으로 평가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점수 그래프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최고점과 최저점의 차이일 것입니다. 이 점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능력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는 인지 불균형이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개별 점수 또는 점수의 조합이 해당 능력의 강약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하위 영역들은 서로 밀접한 상관을 갖는 반면 어떤 능력들은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서로 상관 관계가 높거나 하나의 능력 범주로 묶어볼 수 있는 소검사 간의 점수 차이가 클 경우 이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중이 동일한 80킬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비만의 기준이 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만이 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특정 능력과 관련 있는 하위 소검사 점수들간 차이가 뚜렷할 경우 비록 해당 특정 능력이 상위에 랭크된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에서 예를 든 피검사자의 언어적 이해 능력(상식, 공통성, 어휘, 이해 소검사 점수의 조합으로써)은 전체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다소 높은 능력 정도를 보이고 있으나, 하위 구성 소검사 점수들 간의 차이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해당 능력의 구성이 고르지 않은 것을 의미하거나 능력의 사용이 비 효율적인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예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상식 소검사가 측정하는 능력 특성이 후천적 학습과 관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관련 능력의 보강이 이루어진다면 전체적인 지적 능력의 향상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낮은 점수 분포를 보인 능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보강의 대상만으로 보고 해당 능력 향상만을 목표로 교육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개별 능력의 향상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것을 피검사자의 지적 능력이 갖는 고유한 특징으로써 인정하고 보다 나은 성취를 할 수 있도록 교육 전략을 수립에 이런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지능 검사 결과에 대한 가장 최악의 반응 중 하나는 낮게 나온 지능 지수를 올리기 위해 시험 공부를 하듯 지능 검사 문항과 관련된 연습이나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지능검사 문항을 학습하고 사전 학습 효과로 이후 지능검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실제로 지능이 올랐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소검사 점수가 낮다고 해서 여기에 대한 대증 처방을 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 먼저 이런 능력의 차이가 실제적인 차이인지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차이인지를 판별하고 차이가 있다면 어떤 교육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진행할 것인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기존의 접근법인 지능을 대표값 지수로 단순 이해하지 않고 다차원적인 능력으로 보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다중지능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중지능은 지능에 대한 이론 중 비교적 새로운 이론입니다. 다중지능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지능 이론이 학업 성취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고 지능을 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발휘되는 정신의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중지능이론은 표준화된 지수-IQ 중심의 지능 설명을 탈피하고 인간의 지능을 다차원적 능력으로 규정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다중지능 이론가인 하버드 대학의 가드너박사는 지능을 생체, 심리학적으로 내재된 가능성이나 능력으로 보고 이런 가능성으로 8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바로 논리-수학 지능, 언어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자기이해지능, 그리고 자연탐구지능이 그것인데, 가드너는 각각의 지능들이 서로간에 독립적이면서도 동등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개별 지능 내에서도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마다 강하고 약한 지능이 다르고 그 조합도 다양할 수 밖에 없으므로 다중지능론자들은 먼저 학습자가 어떤 지능을 가졌는지 확인하고 여기에 맞는 맞춤식 교육으로 그 사람의 미래를 대비하도록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소질과 재능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 여기에 맞춰 교육하자는 것입니다.

다중지능의 이런 접근 방법은 종래의 지능개념이 학교에서 주로 다루는 논리력, 기억력, 언어력 등의 인지 능력만을 강조하고, 학교 밖 사회생활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여러 다른 능력들의 중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자녀의 지능을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여기서 다중지능을 소개한 것은 기존의 지능이론이 틀렸다, 아니다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능에 대한 이론 중 어느것이 옳으냐 그르냐 보다 실제 교육 장면에서는 어떻게 적용하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작성 지능이 되었던 자연탐구지능이 되었던 간에 중요한 것은 먼저 사람마다 갖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가 가져오는 (당신의 자녀의)가능성을 찾아내어 현실화 하는 것이야 말로 당신의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올바른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자녀는 어떤 지능, 어떤 능력에서 상대적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 여기에 적합한 교육 및 커리어 전략은 무엇일까요?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내 아이의 한길 속 4

* 이 글의 저작권은 유병도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SII, 스트롱 진로탐색검사, 스트롱직업흥미검사는 각각 미국의 CPP, 한국의 한국심리검사연구소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3장 내 아이의 한길 속 어떻게 들여다 보나


직업흥미 검사 편

검사나 상담을 하다 보면 직업흥미 검사를 보통 적성검사로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성 검사는 오히려 지능검사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능력이 어느쪽으로 더 발달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거기에 따라 그 사람의 진로를 제시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산수를 잘하면 수학자가 되겠구나… 뭐, 이런 식이죠.

현재의 능력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진로를 정한다는 것이 일견 타당한 것 같이 보이지만,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모든 직업을 포괄할 수도 없을 분더러, 한참 성장하는 아이들의 경우 키워온 능력보다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더 큰데도 현재의 능력 정도로 미래의 성취 분야까지 정한다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뭘 잘했느냐를 살펴보는 것 보다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역이나 내키지 않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성취 수준 자체를 떠나 그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즐거움을 느끼고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일 또는 활동분야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활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좋아하며, 자발적으로 그 일에 몰두하거나 열정을 갖게 될 때, 우리는 그 일이나 활동에 대해 흥미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떤 분야에 이런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그것이 힘들어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는 능력이나 성취의 본질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끊임 없는 반복 수행의 결과임을 고려할 때 이런 꾸준함이야 말로 그 분야에서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요컨대 능력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로나 직업 선택을 할 수 없고, 흥미 있는 것을 해야 잘 한다는 말이죠. 흥미야말로 현재 보유 능력보다 더 중요하고 미래 능력과 그 사람의 만족도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흥미는 노력을 통해 쌓을 수 있는 능력과는 달리 청소년기에 형성된 이후에는 잘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에 자신의 흥미를 끼워 맞추기 보다는 자신의 흥미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고 여기에 적합한 능력을 쌓아 나가는 것이 일견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진로 선택을 위한 흥미는 어떻게 알아볼까요?
지능검사나 성격검사와 같이 이런 흥미를 알아보는 검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중에서 Strong 직업 흥미 검사를 소개하겠습니다.

STRONG 흥미검사는 1919년 미국의 직업 심리학자 E.K. Strong, Jr.에 의해 개념화 되어 1927년에 Strong Vocational Interest Blank(SVIB)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인간의 흥미를 다루는 최초의 심리검사로써 직업의 흥미를 측정하는 다양한 검사들 중에서 가장 폭 넓게 사용되는 검사입니다.
이후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시대 및 사회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다각도로 개정되어 왔으며 특히 개인의 진로 선택과 적응의 문제를 다루는 직업 상담 영역에서 내담자의 흥미에 관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폭 넓은 직업 세계에 대한 탐색과 진로 선택 및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스트롱 흥미검사는 두 종류의 흥미검사로 나뉘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는데, 그 중 한국판 Strong 진로탐색 검사는 한국 청소년의 진로 및 직업 탐색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개발한 심리 검사입니다. 중,고교생기의 진로선택이 확정적이기 보다는 대략적인 선택이라는 특징을 반영하여, 이 검사는 자신이 진로선택을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자신의 전공 및 직업을 선택할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이런 진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이 전제 되어야 본인과 주변이 인정 속에서 현재의 학습 수행에 대한 동기 형성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진로 탐색은 결코 늦은 것도 아니며 오히려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Strong 진로탐색검사는 진로성숙도 척도와 흥미유형 척도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로성숙도 척도는 수퍼 Super의 진로 성숙이론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써, 합리적인 진로선택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진로성숙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를 위해 본 검사에서는 진로정체감, 진로준비도, 진로합리성, 가족일치도, 정보습득률을 측정합니다. 진로 성숙도를 확인하는 것은 진로 성숙도가 낮은 경우 제시되는 진로 정보들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진로지도 현장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로성숙도가 높지 않다면 먼저 진로 성숙도를 높인 다음 적절한 진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흥미유형척도는 직업심리학자인 홀랜드 Holland의 직업흥미이론을 바탕으로 한 6개의 흥미 유형에 대한 선호도를 6개의 척도-직업, 활동, 과목, 여가, 능력, 성격 별로 측정하여 산출하고 그 중 가장 높은 점수 2개를 최종 흥미유형 코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판 Strong 직업 흥미 검사는 청,장년 이상의 성인을 위한 검사로써 3개 영역 35개의 척도로 구성되어 진로탐색검사 보다 다양하고 상세한 척도를 통해 구체적인 직업 흥미 탐색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이 검사에는 자신의 흥미에 내재하고 있는 보편적인 패턴을 측정하는 6개의 척도가 포함된 일반직업분류와 특정 활동이나 주제에 대한 흥미를 측정하는 25개의 척도가 포함된 기본흥미척도, 그리고 업무형태, 학습환경, 지위.통솔, 모험/위험감수와 관련한 개인적인 선호도를 평가하는 4개의 척도가 포함된 개인특성 척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기 탐색을 위한 자극 및 삶의 문제를 탐색할 수 있으며 전공 및 직업 선택 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업에서는 선발 및 배치에 활용될 수 있으며 업무 불만족을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력 상담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마인드케어에서는 현재 한국판 STRONG 진로탐색검사와 STRONG 흥미 검사를 통한 자신의 흥미 이해와 이를 통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내 아이의 한길 속 3


* 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MBTI는 미국의 CPP, 한국심리검사 연구소의 등록 상표입니다. *


3장 내 아이의 한길 속 어떻게 들여다 보나 3



-성격유형 검사 편




성격유형 검사 성격 유형 이론은 프로이드와 결별하고 고국 스위스로 돌아온 칼 융에 의해 제안된 이론입니다.
존경하는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프로이드와 좋지 않게 결별하게 된 융은 그 사실을 대단히 가슴 아파했고, 이런 경험이 인간의 다름에 대한 그의 천작을 깊게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융은 사람은 모두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마다 보이는 (성격의) 차이점은 어떤 기능의 있고 없음이 아니라 어느 기능을 더 선호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가 사람을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4가지 기질로 나누어 본 것에서 시작되어 기능의 선호에 따라 분류한 융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성격 특성을 기능론 혹은 기질론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유럽 학자들의 노력은 검증 가능성과 과학적 엄밀성을 내세운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강력한 도전과 배쳑에 직면하면서 거의 사장되는 듯 보였습니다.

유럽의 이런 학문적 경향에 대해 대척점에 서 있던 미국에서 칼 융의 이론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기까지 합니다. 1950년대 인간이 성격에 대한 다양한 통찰과 조사를 거듭하던 미국의 브릭스-마이어스 모녀는 자신들의 통찰을 뒷받침해 줄 이론적 근거를 융의 성격유형이론에서 찾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고안하였습니다.

MBTI는 인간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통찰과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는 유용성으로 인해 상담, 교육, 커뮤니케이션, 리더쉽, 팀 빌딩 등 다양한 방면에서 폭 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10세에서 15세까지 아동의 성격 유형을 알아볼 수 있는 MMTIC과 그 이상의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MBTI Form G와 보다 최신의 개정판으로써 보다 상세한 유형 탐색을 가능케 하는 MBTI Form F가 교육, 조직, 상담, 종교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오직 MBTI만이 유일한 성격유형 검사는 아닙니다. 게다가 ‘성격 유형’만이 인간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이론도 아닙니다. 당장 커시 기질 검사와 같이 MBTI와 동일한 이론적 기반을 공유하는 다른 검사들도 존재하며, 성격유형이론과는 다른 이론에 입각하여 개발된 검사도 있습니다. 사실, 임상 장면에서는 MBTI보다는 진단적으로 보다 엄밀한 MMPI 나 로샤 검사를 전문가들은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당시로는 측정하거나 관찰할 수 없었던 인간의 사고과정은 블랙박스로 두고 오직 관찰 가능한 행동에 주목했던 것처럼, MBTI의 기반이 되는 성격유형이론이 인간의 성격을 본질을 밝혀주느냐 아니냐에 관한 학문적 논쟁을 제쳐두고 MBTI가 갖는 유용성과 확장성은 주목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자녀의 특성 중 하나로 성격유형을 알아보자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자녀의 성격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편 이 검사는 순수한 자기 보고식 검사로써, 의도한 오반응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솔직하게 응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본 검사 시행에 앞서 이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MBRI는 융의 성격유형이론에 근거하여 4가지 쌍의 기능 중 각각 무엇을 더 선호하는가를 알아보고 여기에 따라 당신의 성격유형을 탐색하게 됩니다.

그럼 MBTI가 살펴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당신의 주의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외향과 내향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알아봅니다.
외향은 외부로 주의를 돌리고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심리적 에너지를 얻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내향의 경우에는 자신의 주의가 내면으로 향해 있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심리적 에너지가 서서히 차오릅니다. 따라서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상호 작용하는 것이 수단이자 목적인 반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비록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보는 것은 당신이 세상을 인식하는데 있어 어떤 기능을 더 선호하느냐 입니다.
세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은 두 가지 기능 중 하나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감각형으로, 이 기능은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정보에 주목하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직관형은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원리나 흐름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려고 합니다.
이에 관해 융은 직관형을 씨 뿌리는 사람에, 감각형을 가꾸고 거두는 사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가능성을 중시하는 직관형은 어떤 일의 씨를 뿌릴 수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그것을 지키고 가꾸어 거두어 들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반면, 감각형은 숨겨진 가능성 보다 드러난 그것을 지키고 가꾸어 거두어 들이는 것에는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그 다음은 판단이 뒤따릅니다.
판단에도 두 가지 기능 중 하나에 대한 선호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형의 경우 사실에 의거한 논리적인 판단을 선호하는 반면, 감정형의 경우 관계를 중심에 둔 정서적 판단을 선호합니다. 라서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할 때 사고형은 이것이 원칙에 위배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옳다 그르다로 비개인적인 판단을 하는 반면, 감정형은 이것이 나와 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좋다, 나쁘다로 개인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마지막은 생활 태도에 관한 것인데, 판단형은 연속되는 일상 생활의 매 순간순간을 매듭짓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심리기능 중 판단 기능을 외부로 사용해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행동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식형은 열려 있는 태도로 보다 많은 정보를 인식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매 순간순간을 매듭짓지 않고 결정을 유보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목적과 방향을 유동성 있게 받아들이며 자율적이고 융통성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판단형은 어떤 목표가 생기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태도를 갖는 반면, 인식형은 비록 그 목표와 계획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세상 일은 어찌될지 모르므로 그 목표와 계획은 유동적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네가지 종류의 선호에 대한 조합은 16가지의 성격 유형과 각 유형별 특징, 그리고 그 사람의 기질에 대한 부가적인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이런 정보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여기에 근거해 갈등 관리나 팀 빌딩, 학습 유형에 따른 적합한 학습 방법 지도 등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마인드케어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생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격 유형 검사 MMTIC과 그 이상의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MBTI (Form G와 개정판 Form F) 를 보유하고 있으며, 성격유형의 확인 뿐 아니라 여기에 근거한 자기 탐색과 대인 감수성 개발, 학습 스타일 탐색 및 훈련, 부모-자녀 관계 훈련, 가족 상담, 개인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 2일 금요일

내 아이의 한길 속 2



* 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


3장 내 아이의 한길 속 어떻게 들여다 보나 2


- 지능검사 편


[그림. K-WISC3]
첫번째로 꼽은 특성인 지능을 지능검사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쯤은 이 글을 읽는 당신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이야기이고 누구나 '지능지수 IQ가 얼마' 라는 말을 한번쯤은 접해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표값 지능지수로 그 사람의 지능을 요약하는 것이 쉽고 간편할지는 몰라도 자녀의 성공을 위해 알아두어야 할 정보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별로 쓸모도 없어 보입니다.
"당신의 자녀 지능은 상위 98%로 지능지수 130 이나 됩니다."
혹은
"지능지수가 85 밖에 안되네요. 하위 16%입니다."
라는 말이 당신의 기분을 잠시나마 좋게 하거나 상하게 할지는 몰라도 그 이외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그 자체를 서열화 된 점수로 인식하는 이상, 지능지수와 지능에 대한 오용은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자녀의 특성 중 지능을 알아야 한다고 여태 말하고서는 이제 와서 별로 쓸모없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IQ 얼마라는 단순화 되고 요약된 정보가 아니라 자녀의 지능 전반에 대한 상세하고 심도 있는 정보이며, 제대로 된 지능검사라면 이런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어떤 지능검사가 좋고 무엇이 나쁘다는 식으로 여러가지 지능검사들을 비교 분석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대단히 민감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인정 받고 가장 많은 현장 전문가가 사용하는 지능검사인 웩슬러 지능 검사를 소개함으로써 지능검사에 대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미국 뉴욕의 임상심리학자인 웩슬러에 의해 1939년 개발된 웩슬러 지능 검사는 끊임없는 개정과 검사 대상 연령층의 확대, 그리고 현대화를 거쳐 현재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검사입니다. 또한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다른 지능 검사들이 그 타당성을 입증하는데 인용될 만큼 높은 권위와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지필 지능 검사는 단순히 지능지수와 그 연령에서 해당되는 위치만을 언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며, 집단적으로 시행됨으로써 개인의 미묘한 개인차를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웩슬러 지능검사는 6개의 언어성 검사와 5개의 동작성 검사로 나뉘어진 소검사를 검사자와의 일대일 상호작용을 통해 개별적으로 측정함으로써 보다 상세히 개인의 지적인 능력 수준을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징적 지적 능력이 있는지, 어떤 영역이 강하고 어떤 영역이 부족한지를 알 수 있으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재 또는 발달 장애나 정신 이상을 판별해 낼 수 있는 강력한 검사 도구입니다.

아울러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뇌 손상 여부 및 손상 정도와 뇌 손상에 동반되는 지적 능력의 손상 정도와 특징, 치료에 따른 지적 기능의 회복 여부, 노인성 치매, 약물 남용으로 인한 기질적 손상, 학습 장애에 선행되는 뇌 손상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일반 지능검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강력한 기능입니다.

한편, 웩슬러 지능검사가 갖는 강력한 장점 중 하나는 타 검사와는 달리 웩슬러 지능이론의 틀 안에서 3세 이후의 모든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비교적 일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동일한 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연령대별로 3종의 지능검사가 개발되어 전 연령대를 모두 검사할 수 있고 그 검사 결과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쉽게 말해 유치원 때 지능 검사 결과와 고등학교 때의 지능 검사 결과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무슨 대단한 장점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지능검사의 경우 검사 연령층이 제한되어 있어 대상 연령층을 벗어나게 되면 지능은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지능 검사를 받으면 되긴 하지만, 문제는 이럴 경우 예전에 받았던 지능과 이번에 받은 지능검사의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3살 때 키는 인치 단위 자로 재고 9살 때 키는 센티미터 단위의 자로 잰 다음, 단위는 무시하고 단순히 두 숫자만을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비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웩슬러 지능검사의 이것이 가능하므로 일회의 검사 보다 더 많은 정보-지능의 발달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63년 성인용 검사 도입을 필두로 현재 3종의 웩슬러 지능 검사 모두 도입되어 심리학자, 교육학자, 의학자 등 심리측정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각급 영재 교육 관련 기관에서 영재 선별 검사로써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판정기준’이나 각급 교육청의 ‘특수교육대상자선정배치업무처리’ 등 정부 기관의 공식 문서에도 해당 업무 처리와 관련해 동 검사를 활용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임상심리학회에서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자격 요건으로 지능검사 중에서는 웩슬러 지능 검사의 활용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목 중 심리검사 영역에서 웩슬러 지능 검사 시행 및 채점, 해석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웩슬러 지능 검사는 전문가와 각급 기관으로부터 지능 측정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로써 그 가치와 권위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한편, 웩슬러 지능검사는 다양한 소검사가 장시간(1~2시간)에 걸쳐 진행되므로 집단 검사가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검사자와의 밀접한 상호작용과 함께 주의 깊게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마인드케어에서는 한국어판으로 재표준화 된 웩슬러 검사 중 가장 최신의 웩슬러 지능검사 2종- 아동/청소년용 K-WISC3, 유아용 K-WIPPS -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능의 균형적인 발달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지능이 높은 아동(상위 98% 이상)을 위한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 1일 목요일

내 아이의 한길 속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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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내 아이의 한길 속 어떻게 들여다 보나 1-2

>> 앞글에 이어서

한편, 이런 문제와는 달리 상업적 목적으로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도입된 검사의 경우,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만든 검사와 척도로 우리 아이들의 특성을 측정하고 정의하는 무리수를 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신뢰성 높은 심리검사 중에는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검사가 드문 편입니다. 짧은 한국 심리학의 역사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이런 검사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검사는 외국, 특히 미국의 검사를 도입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국의 검사를 도입하는 경우,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 검사가 갖는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한국 문화에 맞게 검사 문항을 변형하거나 조정 해야 하고, 이런 변형이나 조정에도 불구하고 원 검사와 동일한 측정 항목을 동일한 방법으로 측정하여 해당 검사가 측정하고자 하는 특성의 차이-지능 검사의 경우에는 지능-만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엄밀한 표집을 거쳐 재표준화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재표준화 과정은 어찌 보면 검사를 새로 만드는 것과 그리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몇몇 평판 높고 널리 사용되는 검사를 제외하고는 이런 비용을 감내하면서 심리검사를 제대로 제작하기에는 한국 시장이 너무 작으며 투자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런 재표준화 과정을 무시하고 단순히 번역하여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개발된, 널리 알려지고 많이 사용되는 심리검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닌 말로 틀린 자로 아이의 키를 아무리 재어본들, 그것이 어떤 쓸모가 있겠습니까?

사실 이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진지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바로 재외 한인 자녀-다중 언어 문화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한인 자녀들에게 단일 한국어 문화를 기준으로 표준화된 한국의 심리검사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문제이며, 이런 상황에서의 검사 적용과 해석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심리검사가 자녀의 특성을 탐색하는 대단히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인 것은 사실이나, 그러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준비되고 실행되며 해석되어야 합니다. 또한 심리검사의 결과 자체는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선고로써의 의미를 갖기 보다는,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가 스스로 자신을 탐색하는 출발점으로써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당신의 자녀가 자기 자신을 알고, 당신의 자녀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그 쉽지 않은 일을 맨손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태산을 메라고 시킬려면 하다 못해 호미라도 쥐어주고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리검사는 그런 호미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굴삭기 같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심리검사 결과는 자녀의 특성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자녀의 특성을 탐색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내 아이의 한길 속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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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내 아이의 한길 속 어떻게 들여다 보나 1


앞에서 자녀의 성격을 위해 알아야 할 특성 세가지를 꼽아 보았는데요 이런 특성들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갖춘 스승이 당신의 자녀를 지도하면서 얻은 통찰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육이 산업의 일종이 되어버린 요즘, 아쉽게도 지식 판매자와 구매자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관계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핵가족화 된 가정 환경과 분업화된 현대 교육 시스템 안에서 부모를 제외하고 자녀에게 이런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기나 할까요?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서 자녀를 지켜본 부모가 이런 스승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원망을 투사하는 등 자녀 문제에 있어 객관적이기가 힘들다는 한계가 있어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결국 전문가를 통해 자녀의 특성을 알아보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되어 있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상담자라 하더라도, 짧은 상담 기간 동안 얻은 정보만으로 자녀의 성공에 충분한 도움이 될 만큼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게다가 정보 부족은 종종 상담자 자신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를 높일 뿐만 아니라, 만약 상담 기간 중 자녀나 가정에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면 이것의 영향을 일반화함으로써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하기도 쉽습니다.

따라서 긴 시간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을 객관적인 접근 방법을 통해 대체하면서 주관적 접근이 갖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데, 여기에 적합한 것이 바로 심리검사입니다. 심리검사는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편견이나 주관을 최소화 하면서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철학자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인간에 대한 탐구가 근세기 들어 과학자의 손으로 넘어오면서 체계화 된 심리학은 이런 학문적 경향과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많은 심리 검사들을 개발했습니다.
특별한 교육적 도움의 필요성 여부 판정이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진단, 또는 징집된 병사의 적재적소 배치를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심리 검사는 진단과 배치라는 제한적 용도에서 벗어나 자녀 양육이나 진로지도, 조직 관리, 대인 관계 관리 등 보다 일반적인 영역으로 점차 그 활용도를 넓혀가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개발된 심리검사라고 하더라도 그 검사 결과를 맹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심리검사는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내는 마법이 아니라 통계적인 추정치 이기 때문입니다.
언론 매체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 조사는 오차범위 2.5%…, 유의도 99% 수준…. 하는 식의 단서를 붙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검사 결과 해석에도 이런 단서가 붙는데, 이런 류의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역설적으로는 적어도 1%는 틀릴 수도 있고 만약 이 결과가 틀렸다면 그것은 그 1%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검사 결과는 통계적 추정치이며 이는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 다음 글에 계속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실 없는 소리


인간의 문명은 많은 직업을 낳았으며 그 중 일부는 변화되고 존속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직업이 있었나 싶은 직업 중 하나로 활자를 뽑아 배열하는 식자공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인쇄하기 위해 반드시 활자를 선별해 조판하는 식자공이 필요했지만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그 일은 편집 디자이너와 컴퓨터의 몫이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탁상 출판 시스템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식자공은 긴요한 직업으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외국어 교육은 앞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으로써의 언어 공부는 계속되겠지만 말입니다.
한국인은 영어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영어 교육열이 대단히 강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의 혀에 메스를 댄 다는 해외 토픽감 기사나 토플 같은 영어 시험의 성적 향상을 위해 인격적인 모욕과 스트레스 마저 당연하게 여기는 학원 시스템과 여기에 몰리는 수강생들에 관한 기사를 보고는 도를 지나친 광기마저 엿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영어 교육은 이젠 거기에 밥숟가락 걸친 사람이 너무 많아 파국을 보기 전까지는 계속 덩치를 불리며 비탈길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보입니다. 영어가 경쟁력이라고 외치는 사람을 면면을 살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영어 교육 산업 종사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 상당수가 다시 영어 교육 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그 덩치에 압도되어 모두 거기에 휩쓸려 더 큰 눈덩이를 만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까운 미래에 그 파국이 보일 듯 합니다.

다음은 얼마 전 한 인터넷 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2005년 10월 27일 피츠버그시 카네기멜론 대학(CMU). 이 대학 연구진을 포함한 미국의 여러 학자들과 독일 칼스루허 대학 관계자들이 영상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CMU 알렉스 웨이벨 교수팀의 통역기 연구가 최초로 공개되는 자리.
대만 유학생 스탠 조우씨가 입 주위와 목에 11개의 전극을 붙이고 등장했다. 조우씨는 모국어인 만다린어로 중국어를 모르는 회의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조우씨의 몸에 붙은 전극들은 입 동작을 파악해 조우씨의 중국어 정보를 컴퓨터로 보냈다. 1~2초 뒤에 조우씨의 말은 영어로 바뀐 채 스피커를 통해 회의 참석자들에게 들렸다.
"Let me introduce our new prototype. You can speak in Mandarine and it translates into English or Spanish."(제가 우리의 새 통역기 모델을 소개해 볼게요. 여러분들은 만다린어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와 스페인어로도 통역될 수 있고요).

이 기사에 따르면 관련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전문 통역기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특정 영역-여행이나 의학, 엔지니어링 등-만의 전문 통역이 아니라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통역기가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가까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비록 문자 수준의 해석이기는 하나, 일본은 진작에 한국과 중국어 번역기 개발에 열중해왔고 현재 한국어 사이트와 일본어 사이트 간에는 실시간 번역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이트에서는 한국 네티즌과 일본 네티즌 간에 한일 감정을 앞세운 치졸한 말싸움을 각자의 언어로 주고 받을 만큼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영어의 경우에도-일본어 번역 보다는 좀 더 실망스럽긴 하지만, 구글에서 영어 사이트의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10년 내에 이것이 가능해지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자, 이제 외국어 공부는 모두 때려 치우자! ' 이 딴 주장이나 하려고 장황하게 말을 꺼낸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에서 자연어 명령어 처리기를 개발해서 음성 명령을 인식하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제가 아는 한도에서만 해도 IBM의 OS2 시절부터이니 십수년이 더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제 컴퓨터는 제 말을 못알아듣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통역기의 등장과 그 영향력의 파급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지리라 보아집니다. 실시간 통역기는 다시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제껏 인류가 접하지 못했던 솔루션으로 그 상업적 가치는 대단히 크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기존의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동전화가 위치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몰고온 경제적 가치는 이미 충분히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결합하는 새로운 컨버젼스 기기-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시 우리 목전에서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이 물결이 우리를 휩쓸고 난 그 다음 물결은 바로 언어 장벽이 해소를 통한 전지구적 정보 소통-커뮤니케이션이 되리라 믿습니다. 기존의 인터넷, 이동통신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에 끼친 파급효과를 생각한다면 이 거대하고 매력적인 전인미답의 신대륙을 코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빨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 아니겠죠.

정작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아이들이 주역이 될 근 미래가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할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 제기 입니다. 만약 학자들의 예언대로 10년 후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통역기가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또 어떤 능력이 더 핵심적인 능력으로 평가 받을까요?

예를 들어 한국인과 미국인 그리고 중국인이 각자의 나라에서 이번 수출 물량의 가격 조건을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습니다. 실시간 통역기가 장착된 이 휴대전화는 각자가 자신의 모국어로 하는 말을 동시에 상대방 언어로 해석해서 상대방에게 들려줍니다. 현재의 휴대전화의 컨버젼스를 살펴보면 이 정도 상황 설정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군요. 자, 그러면 이 상황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외국어 구사 능력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키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일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다국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외국어 구사 능력'의 비중이 컸지만 앞으로는 좀 더 무형적인 '설득력'이 더 중요한 역량이 되지 않을까요?

10년이라면 지금 어린이라고 불리는 연령대 아이들이 청년이 될 무렵입니다. 과연 그 때에도 지금처럼 영어교육 시장이 위세를 부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 보다는 해당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적 다원주의 입장에서 그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가 커져 나가기를 개인적으로 기대합니다만 그건 논외로 하고.

여튼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인데 기껏 청춘을 식자공 기술 익히는데 바쳤는데 좀 인정받고 먹고 살만하니 컴퓨터가 나와서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더라... 뭐 이런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있을까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이 사회활동을 시작할 근 미래에도 그렇겠지만 진정한 핵심역량은 영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근미래에는 그렇다고 쳐도 지금도 핵심 역량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소린가 하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군요.

조기 유학을 통해 딴 건 몰라도 영어 능력은 갖추었다고 믿어지는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조기 유학생이 기업에서 환영받고 있느냐? 결론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리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그 희소성 때문에 찾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대기업의 경우에는 써 보니 아니더라는 판단이 인사 담당자들의 입에서 슬슬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도 필요한 만큼의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후보자들은 널리고 널렸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조기유학으로 영어는 잘 할지 모르나 한국 문화에 문외한이 되어 한국의 조직 사회에 잘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 입니다. 천재도 사회성이 떨어지면 자폐로 오진되는 세상인데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그걸 적절하게 펼쳐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실상 대부분의 경우에는 업무 수행 능력이 특출나게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인재를 유학파에서 찾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유학파가 모두 삼성의 핵심 인재인 것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버드니 스탠포드니 하는 명문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조직 문화에 적응 못하면 튕겨나가는 마당인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미국의 지방 사립대학 졸업생을 선뜻 한국대학 졸업생 대신 선택하는 위험을 선택할까요?

조기 유학은 아예 한국을 돌아오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교육 전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으로 정착하고 산다면 모를까 한국을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다면 투입 대비 효과가 비효율적인 교육 전략이라는 말이죠
물론 한국에서 학부를 보내고 다시 외국으로 나가서 전문 학위를 받아오는 네오엘리트 코스가 요즘 각광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코스도 일단은 한국의 명문 대학 학부를 졸업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곤란합니다. 그런데 한국 명문 대학 입학은 해외에서 성장한 아이들에게 특례가 아니라면 사실 상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시는 학부모님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장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인 가정 중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는 외국 학교 공부와는 별개로 한국 수능 과목 공부를 별도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러니하죠. 한국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고서는 정작 외국에서 다시 한국 방식으로 한국 공부를 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조기유학으로 샜군요. 조기 유학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다시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어쨌던 외국어 구사 능력 자체는 지금까지는 어땠는지 몰라도 앞으로는 점점 더 중요한 핵심역량에서 주변부 역량으로 옮겨질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만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판단하여 올바르게 표현하는 '설득력'의 중요성은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더욱 더 중요한 핵심적인 역량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될 것입니다.

P.S 말이 길어지고 산만해졌습니다만 이 글의 주제는 자녀에게 키워줘야 할 핵심역량은 따로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영어나 조기 유학 자체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타문화 이해와 함께 외국어의 사용 능력은 통역기가 이동전화처럼 쓰인다고 하더라도 보조적인 능력으로써 여전히 대단히 중요하고 유용한 지식 형성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조기 유학 역시 자녀의 미래 계획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대단히 좋은 자녀 교육 방법입니다.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열길 물 속은 몰라도 4


* 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감사합니다. *


2장 열길 물 속은 몰라도 내 아이 속 만큼은 4


지난 글에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흥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만… 누구나 알지만 잘 모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흥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앞에서도 비유했듯이 흥미는 옷 고르기에서 그 옷의 ‘용도가 뭐냐?’ 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가 용도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자, 치수도 맞고 디자인도 딱 맘에 드는 드레스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그 드레스를 입고 수영장을 간다면? 아니면 상가집을 가는데 수영복을 고른다면? 스킨 스쿠버를 할 건데 스키복을 고른다면? 이건 좀… 요즘 개그 코너 중 하나인 "이건 아니잖아" 라는 단말마가 나올 것 같군요.
아무리 몸에 맞고 멋진 옷이라고 해도 용도에 맞지 않다면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화재 현장에 수영복을 입고 출동하는 소방관처럼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조차 합니다.

다시 말해 옷을 고를 때는 그 옷의 용도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듯이, 자녀의 성공에도 그 목표나 방향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방향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과거에는 부모님이나 준거집단의 압력이 그 방향을 결정하기도 했고, 아직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점점 개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지금에 있어 그 방향의 단초는 바로 자녀의 흥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자녀의 흥미가 뮙니까?

이런 질문에 막히지 않고 답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심지어는 자신의 흥미조차 모르는 경우(불행히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의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가 허다한데, 자녀의 흥미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적성이란 개념조차 없이 무조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절을 거치면서 내 자식만큼은 하고 싶은 것, 적성에 맞는 것을 교육 시켜 줘야지라고 다짐하고 마음 굳게 먹지만, 문제는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과거 자신의 부모님이 선택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실상입니다.
게다가 제도화 된 집단교육, 특히 한국처럼 테크트리에 따른 효율적인 수능 고득점자 양산에 초점이 맞춰진 현실 속에서는 부모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볼만한 충분한 경험도 지식도 , 성찰도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 의식을 뚜렷이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을 가진 케이스 보다는 부모나 주변의 권유를 자신의 흥미로 자기 암시 하거나, 그것도 없이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왜 하는 지도 모를 공부를 시키니까 한다는 식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할 맛이 나지 않고 결국 담을 쌓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없이 계획이 있을 수 없고 실천의 에너지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궁색하게 제시되는 미래가 수능 몇 점, 혹은 수도권 소재 무슨 대학 하는 식의 동기 형성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불충분한 목표 제시 밖에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자녀의 흥미를 (가급적이면 자녀 스스로) 탐색하고 그 흥미와 맞는 분야를 자신의 목표로 삼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어느 대학 갈래?”가 아니라 “무슨 전공을 하고 싶냐”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입학 전에는 일류, 졸업 후에는 이류나 삼류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 대학교의 현실은 바로 이런 점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력은 있을지 몰라도 열정이 없는 학생들에게서 과연 어떤 학문적 성취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취직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에나 바쁠 뿐이죠. 이런 취업 준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준비라면 또 이야기가 틀려지지만, 원치 않는-아니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을 왔던 패턴의 반복인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녀의 성공을 위한 방향타로서 흥미를, 자녀의 성공을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세 번째 요소로 꼽고 싶습니다.

자, 그럼 다음 글에서는 이런 지능과 성격유형, 흥미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07년 10월 28일 일요일

열길 물 속은 몰라도 3


* 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감사합니다. *


3장 열길 물 속은 몰라도 내 아이 속 만큼은 3


자녀의 특성으로써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성격 유형입니다.
성격유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가 엄밀한 학문적 정의를 다루는 자리는 아니므로 성격유형 개념이 갖는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흰 고양이던 검은 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되니까요.

성격유형은 자녀의 성공에 어떻게 관련이 있을까요?

물론 단순히 착한 아이는 잘되고 못된 아이는 벌받는다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전래 동화의 교훈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자녀의 성공에 있어서 성격유형을 주목하는 이유는 성격유형이 그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경험적 통찰 때문입니다.

사람은 컴퓨터와 달리 정보의 인식과 처리,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주관을 벗어나 객관적이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당장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더 크게,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것은 처리와 표현 단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격유형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해석,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일정한 경향성이 그 사람의 성격 유형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역으로 그 사람의 성격유형을 이해함으로써 그 사람이 세계를 대하는 경향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정보처리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유용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그런 면에서 자녀의 성공을 옷 입기로 비유할 때 지능이 치수로써 의미가 있다면, 성격 유형은 어떤 디자인에 대한 선호 경향-패턴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디자인이 있고 선택에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편하고 만족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어야 옷 맵시가 나기 마련입니다.

패션 감각이 최신 명품을 온몸에 휘두르는 재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산 옷이라 해도 그 옷을 입을 사람에게 맞게 코디네이터 할 줄 아는 재능을 말하듯이 자신이 선호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터 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정보처리의 경향성과 성격유형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이런 특징은 최근 들어 학습스타일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고 있습니다.
유화 물감으로 수채화식 붓 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그리 일반적이고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듯이 그 사람의 성격 유형-패턴에 맞지 않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 역시 그리 적절한 선택은 아닙니다. 반면,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이런 성질을 잘 이용한다면 어떤 재료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듯이 자신과 자녀의 성격 유형을 알고 그 차이를 이해한다면 자녀의 성공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옷도 디자인에 따라 신체적 특징-치수를 도드라지게 보이게도 하고 드러나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디자인의 옷을 입느냐는 그 사람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의 신체적 장점을 부각시켜주기도 하고 결점을 보정해주고 덮어주는 역할까지 합니다.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지능의 크고 작음은 일반적인 범주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첫번째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치수도 딱 맞고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또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요? 옷 고르는데 또 다른 것도 필요한가요?

예 있습니다. 바로 용도입니다. 그 옷을 어디에 입을 것이냐는 거죠.

다음 호에서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알아야 할 세 번째 항목으로써 흥미를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10월 27일 토요일

열길 물 속은 몰라도 2


* 이 글의 저작권은 유병도에게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본문의 수정, 첨삭은 금지되며 원저자의 사전 허락 없는 본문의 일부나 전체의 인용, 게시, 배포도 금지됩니다. 감사합니다. *


2장 열길 물 속은 몰라도 내 아이 속 만큼은 2


지능은 인간의 지적 활동을 위한 기본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지능을 자녀의 성공을 위한 요인 중 하나로 들다 보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능이 높아야만 좋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처음으로 꼽고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 항목이라고 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건물에는 대부분 기초가 있고 그림에는 바탕색이 있지만 아무도 바탕색을 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기초를 건물로 보지는 않듯이 말입니다.
지능 역시 그 자체가 성공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척도라고 하기 보다는 성공을 위한 바탕, 기초로써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종종 낮은 지수에 실망하시거나 높은 지수에 화색이 도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영재라고 해서 마냥 기뻐할 일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영재는 각종 발달 장애로 오진 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여기에 대한 케어링이 필요하며, 영재가 가진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특수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원성이 인정되지 못하는 집단 분위기에서 영재는 자신의 ‘선물 받은’ 재능을 버리고 ‘일반’ 속으로 백기투항 하던가 아니면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살아가던가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고흐와 같이 뭇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러나 자신의 내면은 고통으로 가득 찼던 천재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힘겨운 선택보다는 천재성을 버림으로써 평탄한 생활을 선택한-대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알려진 천재들보다 잘 살지 못했다, 또는 덜 행복했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제5공화국 초기 국가적 차원에서 영재를 선발하고 교육하겠다는 시도가 한번 있었습니다. 정통성 없는 정부가 벌인 보여주기 행사라 실제 추진 의지가 없었는지, 이 시도는 1년 남짓 형식적으로 시행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때 선발된 영재들의 거취를 몇 년이 지난 후 추적 조사를 해보니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통념에서의 성공과도 거리가 먼 낮은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지능을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은 옷을 고를 때의 신체치수와 같습니다. 팔 길이와 허리, 가슴 둘레 등 각 신체 사이즈를 정확하게 측정해 여기에 따라 옷을 만들면 자신의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성복-현대적 제도 교육-도 맞춤옷에 비해 손색이 없는 편이므로 굳이 맞춤옷을 해 입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성복을 입을 때도 허리 치수 정도는 알고 있어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지능은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을 눈대중이 아니라 신체 치수로 고르듯이 자녀에게 적합한 교육전략을 선택할 때 기본적인 선택 기준을 제시해주고 혹, 특별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선택에 유의점은 없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옷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것 중에서 치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마 디자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옷의 디자인으로 비유될 수 있는 자녀 성공의 두 번째 요인인 성격 유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족 그리고 코메리칸


예전에 제가 일하는 회사의 물류센터에는 조선족 부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번 돈으로 이미 고향에 슈퍼 마켓과 아파트까지 두채 가지고 있다는 자랑을 듣고는 그의 코리안 드림이 성공한 것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 한국과 중국이 축구를 하면 자긴 중국팀 응원한다면서 대국의 국민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래도 동포라고 생각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느니 따위의 순진한 분개라기 보다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본 탐험가처럼 신기했다고나 할까요?

어차피 축구는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도 관심없어 하는 편이라 누가 누굴 응원하건 말건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고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그냥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타자에 대한 배척과 우월감 덩어리인 중화사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인데, 그 대국이란 말을 화족도 아닌 조선족에게서 들으니 좀 인상이 깊게 남았나 봅니다.

이후로 시간이 지날 수록 조선족을 짝퉁 짱께니 뭐니 하면서 비하하는 한국인들을 점점 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많은 한국인들이 조선족의 이중적인 태도-권리를 주장할 때는 동포를 내세우고 의무에 대해서는 중국인임을 내세우는-를 이야기 하면서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사람들로 비난합니다. 자기 아쉬워 한국에 왔으면서도 중국이 한국보다 큰 나라라며 한국을 우습게 여긴다고 분개합니다. 중국인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조선족을 한국인이 동포로 생각하고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까지 말합니다.

정체감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지식과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체감은 후천적인 것이며 이는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성장한 조선족에게 한국인의 정체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행위와 사실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자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너희도 한국인인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이건 배신이다. 그래서 너희 보다 차라리 외국인이 더 낫다는 식의 감정적 대응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자라나서 그렇게 가진 정체감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와는 비교되는 다른 사례를 하나 꼽아 보고 싶군요. 사실은 이 기사를 보고나서 조선족 경우가 떠올랐고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그런데 지난 27일 동아일보에 난, '코리안 아메리칸 200만 시대…교포사회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요, 이 기사 말미가 아주 대미를 장식하더군요.
포트리라는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인 비율이 높아져서 지역 교육청에서 초등학생 희망자에 한해 영어와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중언어교육 시범 실시를 논의했다고 하는데 한인 학부모는 물론 다른 민족 학부모도 반대해서 이중언어교육이 실시되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언어는 문화이자 사고이며 정체감 형성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당당히 주류 언어의 하나로 키울 생각은 고사하고 주어지는 기회도 앞장서서 마다하는 것을 보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다른 타당한 이유도 있으리라 기대도 품어보지만 아마 십중 팔구는 아이들 영어 학습에 방해된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봐야 미국인들이라면 거지도 하는 영어 하나 제대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그러면서 잃는 것이 무엇인지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짝퉁 짱께와 코메리칸,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