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뇌와 마음 쪽으로 달린 김에 이번에 꺼내 든 책은 같은 시리즈 도서 중 하나인 웰리엄 캘빈의 생각의 탄생이었다. 어? 그런데 책 제본 상태가 좀 이상하네? 왜 새 책 답지 않게 헐겁지? 혹시 본 책인가? 책장을 뒤져보니 내용이 생소하다. 책 상태가 좀... 이네 투털거리며 서문부터 읽어 나갔다. 새로운 내용인듯... 하다가 마음의 진화를 읽고 쓴 지난 글에 다윈주의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 기억이 날 것이다. 그 글을 쓸 때 다윈주의에 대해 언급한 다른 책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렇다! 난 이미 이 책을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아놔... 그러고 보니 책 중간에 지능의 토대로서의 통사론을 다루면서 저자가 제안한 언어기계 그림이 눈에 익다. 지능이 언어와 밀접하다는 것과 번역기는 인지학자나 신경 과학작가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떠오른다!
전에 읽었던 감흥을 되살리며 책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긴 하지만, 이미 읽은 책을 '너 누구?' 이러는 건 좀 심하다.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과거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과 연구는 철학자의 몫이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들 철학자들의 이러한 성찰은 나름 진지했으나, 세상이 불, 물,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설만큼이나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들이 가진 관찰과 지식의 한계 속에서 내린 결론이나 선언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했던 사유와 성찰 과정에 있을 것이다. 재료가 좋지 않았기에 옹기를 만들었을 뿐, 그 옹기를 빗고 구운 기술만큼은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나 할까?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 좋은 흙을 가졌어도 그 옹기만큼 변변한 그릇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나일지도 모른다. 선대의 영광에 비견해 지금의 나를 자학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위대한 그들을 못난 오만으로 비웃지는 말자는 것이지.
사실 철학에 대한 내 태도는 거기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철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제도교육의 영향으로 다른 분야 보다 지식보다는 사고의 전개 틀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진 철학을 만만히 보는 경향과 이미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목적의식에 오염됨으로써 눈이 멀어버린 맹목적인 이즘의 횡포를 접하면서 '근거없는 사변과 순환론의 연속인 철학' 에 대해 일종의 불신마저 품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을 들어보고 생각해볼 기회는 그리 갖지 못했다.
"도대체 철학자가 하는 게 뭐야?"
물론, 내가 대니얼 데닛이 쓴 마음의 진화라는 책에서 그런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이언스 마스터즈 시리즈의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에서 대니얼 데닛은 눈에 띄는 지식이나 결론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전형적인 철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이랄까? 자, 이런 문제가 있고 내가 여기까지 한번 생각해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뭐 이런 식이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저자가 철학자임을 알았을 때,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마음을 주제로 다룬다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대부터 마음은 철학자의 영역이었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마 심리학이 마음이라는 영역에 깃발을 꼿음으로써 더 이상 철학자가 여기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신한 것은 참신한 것이고 일단 철학은 자꾸 나에게 생각하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에 좀 귀찮다... 책 읽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집어던질까 말까 망설이면서 계속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철학자가 실험과 과학적 방법에 매달려 개미처럼 일하는 과학자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과 (과학만큼이나 엄밀한) 논리성으로 무장한 채 굼뜬 과학자들 머리 위로 통통 뛰어오르는 메뚜기처럼 느껴졌다. 과학이 증명하는 존재라면 철학은 예견하고 가설하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하긴 초창기 유럽 심리학자들이 다시금 재조명 받는 것도 그들의 그런 철학적 통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토대로 철학자가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것을 목격한 것은 내게 대단히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몸에도 마음이 있고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보다 적은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기 위한 진화론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저자의 가설은 대단히 인상깊은 주장이었다. 거짓말을 할 때 진땀을 흘리거나 무대에 나갔을 때 떨리는 등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는 달리 몸이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이 아닌 몸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잘못하면 프로이드의 의식 무의식이 떠올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저자는 다윈의 생물>스키너의 생물>포퍼의 생물 3단계로 나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되씹으며 나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오덕스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3지안이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이 났다. 3개의 눈을 가진 이 종족은 죽지 않는 불사의 종족으로 원래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살았다고 한다. 안죽다보니 너무 오래 살아 인격이 망가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 종족은 멸망하게 되는데, 히로인 격인 3지안은 자신의 원래 인격을 봉인하고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냄으로써 세월의 풍상과 종족의 멸망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자신을 지켜낸다. 가끔 원래 인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인격은 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새로이 세상을 경험한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인격이 기존의 인격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지배하려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원인이나 방법, 결과물이 모두 틀리긴 하지만... 응? 그런데 왜 3지안 이야기는 꺼냈대?
어찌되었건 마음 역시 진화의 산물이고 적자생존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이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촘스키가 인간의 언어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아마 인간의 마음 역시 선천적으로 타고 난 생리적 기반 위에 타고난 것이고 이것이 적자생존의 경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상상해본다면 심리유형론자가 이야기 하는 기질이나 성격유형과도 맥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많은 생각꺼리를 주기는 하지만, 뭐랄까... 송진가루 한번 손에 묻혀본 적이 없는 내가 암벽등반 코스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암벽이 멋지긴 한데 말이지.
사족 하나. 다윈의 진화론은 그냥 이런 게 있다가 아니라 정말 꼼꼼히 뜯어보아야 할 대상인 것 같다. 내가 무지해서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다윈의 진화론은 저평가 받았다는 느낌이 요즘 책을 읽다 보면 진화론은 그냥 환경에 적응한 놈이 살아 남은 거래요라는 주장 그 이상의 것인 것 같다. 근데 그 이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ㅡㅡㅋ
사실 철학에 대한 내 태도는 거기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철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제도교육의 영향으로 다른 분야 보다 지식보다는 사고의 전개 틀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진 철학을 만만히 보는 경향과 이미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목적의식에 오염됨으로써 눈이 멀어버린 맹목적인 이즘의 횡포를 접하면서 '근거없는 사변과 순환론의 연속인 철학' 에 대해 일종의 불신마저 품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을 들어보고 생각해볼 기회는 그리 갖지 못했다.
"도대체 철학자가 하는 게 뭐야?"
물론, 내가 대니얼 데닛이 쓴 마음의 진화라는 책에서 그런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이언스 마스터즈 시리즈의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에서 대니얼 데닛은 눈에 띄는 지식이나 결론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전형적인 철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이랄까? 자, 이런 문제가 있고 내가 여기까지 한번 생각해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뭐 이런 식이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저자가 철학자임을 알았을 때,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마음을 주제로 다룬다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대부터 마음은 철학자의 영역이었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아마 심리학이 마음이라는 영역에 깃발을 꼿음으로써 더 이상 철학자가 여기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신한 것은 참신한 것이고 일단 철학은 자꾸 나에게 생각하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에 좀 귀찮다... 책 읽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집어던질까 말까 망설이면서 계속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철학자가 실험과 과학적 방법에 매달려 개미처럼 일하는 과학자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과 (과학만큼이나 엄밀한) 논리성으로 무장한 채 굼뜬 과학자들 머리 위로 통통 뛰어오르는 메뚜기처럼 느껴졌다. 과학이 증명하는 존재라면 철학은 예견하고 가설하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하긴 초창기 유럽 심리학자들이 다시금 재조명 받는 것도 그들의 그런 철학적 통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토대로 철학자가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것을 목격한 것은 내게 대단히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몸에도 마음이 있고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보다 적은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기 위한 진화론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저자의 가설은 대단히 인상깊은 주장이었다. 거짓말을 할 때 진땀을 흘리거나 무대에 나갔을 때 떨리는 등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는 달리 몸이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이 아닌 몸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잘못하면 프로이드의 의식 무의식이 떠올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저자는 다윈의 생물>스키너의 생물>포퍼의 생물 3단계로 나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되씹으며 나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오덕스러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3지안이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이 났다. 3개의 눈을 가진 이 종족은 죽지 않는 불사의 종족으로 원래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살았다고 한다. 안죽다보니 너무 오래 살아 인격이 망가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 종족은 멸망하게 되는데, 히로인 격인 3지안은 자신의 원래 인격을 봉인하고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냄으로써 세월의 풍상과 종족의 멸망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자신을 지켜낸다. 가끔 원래 인격이 나오기도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인격은 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새로이 세상을 경험한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인격이 기존의 인격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지배하려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원인이나 방법, 결과물이 모두 틀리긴 하지만... 응? 그런데 왜 3지안 이야기는 꺼냈대?
어찌되었건 마음 역시 진화의 산물이고 적자생존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이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촘스키가 인간의 언어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아마 인간의 마음 역시 선천적으로 타고 난 생리적 기반 위에 타고난 것이고 이것이 적자생존의 경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상상해본다면 심리유형론자가 이야기 하는 기질이나 성격유형과도 맥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많은 생각꺼리를 주기는 하지만, 뭐랄까... 송진가루 한번 손에 묻혀본 적이 없는 내가 암벽등반 코스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암벽이 멋지긴 한데 말이지.
사족 하나. 다윈의 진화론은 그냥 이런 게 있다가 아니라 정말 꼼꼼히 뜯어보아야 할 대상인 것 같다. 내가 무지해서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다윈의 진화론은 저평가 받았다는 느낌이 요즘 책을 읽다 보면 진화론은 그냥 환경에 적응한 놈이 살아 남은 거래요라는 주장 그 이상의 것인 것 같다. 근데 그 이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ㅡㅡㅋ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휴먼 브레인
제가 아내에게 심심치 않게 받는 압박 중 하나가 사 놓은 책은 언제 다 읽을 거냐는 겁니다. 간간이 지름신이 발동할 때마다 저를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이기는 한데...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달라서 그렇지 책 읽기라면 아내 역시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라 이번에 아내가 읽을 책을 구매하면서 거기에 살짝 그간 제가 리스트업해두었던 도서 목록을 얹었습니다. 아주 살짝 얹는다고 얹었는데도 아내가 산 책 보다 3배나 많아지는 바람에 아마 책이 도착하면 또 당분간은 귀 닫고 눈 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그 전에 블랙베리를 사야 할텐데... 먼산...
여튼 그 책 도착하기 전에 전에 사놓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예전에 사 놓았던 책을 요즘 광속으로 읽는 중인데 그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책 중 하나가 바로 수잔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사이언스마스터 6번째 책인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공부를 계속했다면 생리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제게는 관심이 있었던 영역이라 그런지 빨리 읽혀지더군요. 게다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뇌기반 학습이라 당면 과제와도 관련되는 이야기고 해서 뇌 관련 책을 좀 볼 필요도 있었구요.
이 책은 상향적 접근법과 하향적 접근법을 차례로 구사하며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미개척인 상태로 놓은 영역도 많고, 알려진 지식 마저도 종종 뒤집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뇌 연구 결과는 적어도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뇌의 기능을 특정 뇌 부위별로 배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흔히들 알려져 있듯이 두뇌 중 어느 부위는 생각하는 곳, 또 어느 부위는 보는 곳, 움직이는 곳 이런 식으로 어떤 능력과 어떤 뇌 부위가 일대일로 매칭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기능에서나 여러 뇌 부위들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외부 세계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뇌의 여러 부위가 상호 조합됨으로써 하나의 기능이 구현되기 때문인지,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기능이 사실은 여러 기능의 조합이기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우리 인체의 다른 기관들이-심장이 피를 순환하고 신장이 피를 걸러주는 것처럼 고유의 기능이 있는 것과는 달리 뇌의 각 부위는 하나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현대 뇌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시적으로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용하고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대한 주제에서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하나 하더군요. 바로 뇌 내 정보 전달이 화학 물질에 좌우되는 특성 때문에 뇌와 동등한 컴퓨터를 만드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저 역시 왜 신경정보 전달에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의 존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아주 좋은 설명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만약 신경세포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전기적으로만 신호가 전달되면 더 단순한 구조로 효율적이고 빠르게 신호를 전달했을지도 모르지만, 뇌는 이런 단순함과 효율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조합의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다양성과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 인간의 진화 역시 특정 환경에 대한 최적화 보다는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기에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될 수 있었고 현재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회로도와 정해진 알고리즘에 근거하는 현대 컴퓨터 기술이 이런 다양성과 융통성,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창발성을 갖추기는 어렵기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저도 동감하게 됩니다. 아무도 계산 빠르게 하는 컴퓨터는 상상해도 시를 짓는 컴퓨터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뇌의 발달과 기능 구성에 있어서 흥미로웠던 것은 출생 전 급격하게 증가한 뇌 세포들이 출생 이후 연결을 시작하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각인처럼 대부부의 동물은 학습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으며 아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밍 된 행동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탁월한 융통성으로 인해 학습에 있어서 민감한 시기가 있긴 해도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갖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신체 기능에 있어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기가 여전히 유효한듯 합니다.
아기 때 사소한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2주간 한쪽 눈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이 그 눈을 실명한 사례가 그것인데, 어른의 경우라면 이미 신경의 연결이 확립되어 그런 처치가 문제가 없었겠지만 출생 직후의 아기는 아직 눈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 형성이 수립되지 않았고 바로 그 때가 신경 연결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 능력에서부터 고차원적인 기억에 이르기까지 신경망의 연결이 대단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낮은 차원의 기본적인 능력일 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이고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 초기 자녀에 대한 양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현대의 뇌 연구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상향식 연구와 하향식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으나 아직 두 연구결과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뇌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독일 서쪽에서 진공하는 연합군과 동쪽에서 진공하고 있는 소련군처럼 언젠가는 엘바강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 엘바강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원리가 살아 숨쉬는 뇌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유혹하지 않을까 합니다.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달라서 그렇지 책 읽기라면 아내 역시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라 이번에 아내가 읽을 책을 구매하면서 거기에 살짝 그간 제가 리스트업해두었던 도서 목록을 얹었습니다. 아주 살짝 얹는다고 얹었는데도 아내가 산 책 보다 3배나 많아지는 바람에 아마 책이 도착하면 또 당분간은 귀 닫고 눈 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그 전에 블랙베리를 사야 할텐데... 먼산...
여튼 그 책 도착하기 전에 전에 사놓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예전에 사 놓았던 책을 요즘 광속으로 읽는 중인데 그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책 중 하나가 바로 수잔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사이언스마스터 6번째 책인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공부를 계속했다면 생리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제게는 관심이 있었던 영역이라 그런지 빨리 읽혀지더군요. 게다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뇌기반 학습이라 당면 과제와도 관련되는 이야기고 해서 뇌 관련 책을 좀 볼 필요도 있었구요.
이 책은 상향적 접근법과 하향적 접근법을 차례로 구사하며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미개척인 상태로 놓은 영역도 많고, 알려진 지식 마저도 종종 뒤집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뇌 연구 결과는 적어도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뇌의 기능을 특정 뇌 부위별로 배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흔히들 알려져 있듯이 두뇌 중 어느 부위는 생각하는 곳, 또 어느 부위는 보는 곳, 움직이는 곳 이런 식으로 어떤 능력과 어떤 뇌 부위가 일대일로 매칭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기능에서나 여러 뇌 부위들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외부 세계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뇌의 여러 부위가 상호 조합됨으로써 하나의 기능이 구현되기 때문인지,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기능이 사실은 여러 기능의 조합이기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우리 인체의 다른 기관들이-심장이 피를 순환하고 신장이 피를 걸러주는 것처럼 고유의 기능이 있는 것과는 달리 뇌의 각 부위는 하나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현대 뇌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시적으로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용하고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대한 주제에서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하나 하더군요. 바로 뇌 내 정보 전달이 화학 물질에 좌우되는 특성 때문에 뇌와 동등한 컴퓨터를 만드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저 역시 왜 신경정보 전달에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의 존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아주 좋은 설명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만약 신경세포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전기적으로만 신호가 전달되면 더 단순한 구조로 효율적이고 빠르게 신호를 전달했을지도 모르지만, 뇌는 이런 단순함과 효율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조합의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다양성과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 인간의 진화 역시 특정 환경에 대한 최적화 보다는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기에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될 수 있었고 현재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회로도와 정해진 알고리즘에 근거하는 현대 컴퓨터 기술이 이런 다양성과 융통성,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창발성을 갖추기는 어렵기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저도 동감하게 됩니다. 아무도 계산 빠르게 하는 컴퓨터는 상상해도 시를 짓는 컴퓨터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뇌의 발달과 기능 구성에 있어서 흥미로웠던 것은 출생 전 급격하게 증가한 뇌 세포들이 출생 이후 연결을 시작하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각인처럼 대부부의 동물은 학습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으며 아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밍 된 행동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탁월한 융통성으로 인해 학습에 있어서 민감한 시기가 있긴 해도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갖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신체 기능에 있어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기가 여전히 유효한듯 합니다.
아기 때 사소한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2주간 한쪽 눈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이 그 눈을 실명한 사례가 그것인데, 어른의 경우라면 이미 신경의 연결이 확립되어 그런 처치가 문제가 없었겠지만 출생 직후의 아기는 아직 눈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 형성이 수립되지 않았고 바로 그 때가 신경 연결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 능력에서부터 고차원적인 기억에 이르기까지 신경망의 연결이 대단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낮은 차원의 기본적인 능력일 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이고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 초기 자녀에 대한 양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현대의 뇌 연구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상향식 연구와 하향식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으나 아직 두 연구결과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뇌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독일 서쪽에서 진공하는 연합군과 동쪽에서 진공하고 있는 소련군처럼 언젠가는 엘바강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 엘바강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원리가 살아 숨쉬는 뇌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유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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