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구글 웨이브 시범 서비스 참여


지금 사용하는 구글 메일도 시범서비스가 시작되는 걸 알자마자 바로 초청장을 구해서 여태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구글에서 새로운 서비스 '웨이브'를 시범서비스 중이란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신청을 했습니다.
안되는 영어로 서너줄 써서 보냈는데도 오늘 사용 허가 메일이 왔군요. 사실 서비스의 정확한 개념이나 사용법 등을 아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시범 서비스 중이라 영문 서비스로만 제공되어 별 기대도 않했지만 초청장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접속했습니다.

근데 이 뭥미...? 구글의 이메일과 노트, 쇼셜네트웍 서비스등이 혼재된 협업도구라는 정도의 개념만 가지고 있었는데... 음...
일단 닥치고 검색 관련자료를 들쑤셔 보면서 개념부터 잡아야겠습니다.

그간 구글의 행보는 여러가지로 제게 흥미를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이미 주가 총액이 IBM을 넘어선 자본주의의 총아인 주제에 '악마가 되지 말자'는 기업 구호부터해서 미국에서 경매로 나온 주파수를 사들여 무료 인터넷으로 공개하겠다는 선언으로 통화료 떨어먹는 재미에 빠져있던 이동통신회사를 엿먹이려 든 것도 그렇고 ... 물론 이 시도는 좌절되었습니다만. 가치를 사용자가 소유하게끔 함으로써 돈을 번 기존 업체들과는 달리 가치의 전환-value shift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이 보이는 행보는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영문 원제 The Age of Access)에서 주장하는 바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역시 현재까지 가장 큰 수익 모델은 광고이고 이 광고는 사용자에게 소유를 격려하는 것이란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압도한다고 해도 결국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근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요즘 트위터가 인기라죠? 한국에선 철수했지만 페이스 북도 세계적으론 인기인가 봅니다. 여기 이동통신회사의 요금제 중에 페이스북 접속에 한해서는 아주 싼 접속료를 부과하는 요금 상품도 나왔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메일과 메신저 채팅에서 딱 멈춰있던 저의 인터넷 사용 양태는 "그 딴 거 필요없다. 이 블로거 하나 글쓰는 것도 귀찮아 죽겠구만." 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좀 바꿀 때가 오지 않았나 싶군요. 그렇다고 부지런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의 게으름을 상쇄시켜줄 환경이 점차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구글의 각종 웹기반 서비스입니다.
사실 웹으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구글 노트나 그룹스 등은 제게 그 전조를 보여주기는 했습니다만 몇가지 이유(결국은 귀차니즘으로 통합되긴 합니다만...)로 그간 사용을 유보했지만 이번 웨이브 참여를 기회로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참, 내년에 구글에서 개발한 구글 크롬을 os로 한 넷북이 나온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아마 이 넷북은 구글이 제시하는 이런 웹기반 사용환경과 찰떡궁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PSP나 DS가 아닌 넷북을 사줘야 한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이죠. 그러고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내년 필수 지름 품목이 하나 선정 되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사죠?

몇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먼저 용돈을 안쓰고 모아서 지른다... 허락 안받고 샀다고 그나마 한달에 십만원 내외로 아내(라고 쓰고 갑이라고 읽는다)가 결제하던 용돈이 결제 정지되는 부작용이 있을듯 하군요.
둘. 이 글을 보여주면서 넷북의 필요성을 아내(라고 쓰고 아내님이라고 읽는다)에게 설득해서 사달라고 한다. 그 동안 ICT 잘 모르는 아내에게 생색내며 자행했던 각종 구박을 한방에 모두 되돌려 받게 될 듯 한데... 문제는 그러고도 사 준다는 보장은 없.... OTL
셋. 매출(?)을 조작(?)해 아내에게 전부 상납(?) 하지 않고..... 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따님 얼굴도 못보고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모험은 안하는 게...

근데 지금 블랙베리도 못지르고 있잖아? 안될꺼야 난 아마..... ㅠㅠ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남자의 자격 - 아내가 사라졌다를 보고

요즘 스마트 폰에 ‘꼿혀’ 관련 정보를 좀 찾아 다녔는데, 스마트 폰 사용하려다가 내가 스마트해져야겠다는 사용자의 푸념 아닌 푸념이 기억에 남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 KBS의 남자의 자격에서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주제로 출연자-당연히 남성-들이 가사 노동을 일일 체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전자레인지를 조작하지 못하거나 진공청소기의 손잡이를 길게 늘이는 것을 몰라 청소 내내 허리를 숙인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묘사되더군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좀 편해 보겠다고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것을 이용해 좀 편해 보려면 먼저 그것을 배워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습니다. 제가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에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이유가 아마 이런 학습에 대한 귀찮음 때문일지 모릅니다.

이런 새로운 학습에 대한 요구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단지 일상의 편리를 제공하는 기계만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학습에 대한 요구는 우리 생활 전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즘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인 SNS의 대표주자 페이스 북입니다. 한국에선 랜챗도 유행하나 보더군요. SNS, 페이스 북, 랜챗 등등 부모님 입장에선 듣도 보도 못한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유행이라니 이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여하튼,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는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나고 있고 그 배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예전처럼 노인이 현인으로 대접받는 시대는 지났나 봅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학습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 피곤합니다.

자, 그런데 지금도 이 정도인데 미래를 살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지식은 이 아이들에겐 무용할지도 모릅니다.
교육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한 지식의 축적으로써의 교육은 그다지 매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의 수명주기가 짧은데다가 그 양도 너무 방대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교육의 목적도 이것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물고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참 쉽지 않은 주제이긴 합니다.◆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휴먼 브레인

제가 아내에게 심심치 않게 받는 압박 중 하나가 사 놓은 책은 언제 다 읽을 거냐는 겁니다. 간간이 지름신이 발동할 때마다 저를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이기는 한데...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달라서 그렇지 책 읽기라면 아내 역시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라 이번에 아내가 읽을 책을 구매하면서 거기에 살짝 그간 제가 리스트업해두었던 도서 목록을 얹었습니다. 아주 살짝 얹는다고 얹었는데도 아내가 산 책 보다 3배나 많아지는 바람에 아마 책이 도착하면 또 당분간은 귀 닫고 눈 감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그 전에 블랙베리를 사야 할텐데... 먼산...

여튼 그 책 도착하기 전에 전에 사놓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예전에 사 놓았던 책을 요즘 광속으로 읽는 중인데 그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책 중 하나가 바로 수잔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사이언스마스터 6번째 책인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마 공부를 계속했다면 생리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제게는 관심이 있었던 영역이라 그런지 빨리 읽혀지더군요. 게다가 요즘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뇌기반 학습이라 당면 과제와도 관련되는 이야기고 해서 뇌 관련 책을 좀 볼 필요도 있었구요.

이 책은 상향적 접근법과 하향적 접근법을 차례로 구사하며 우리 인간의 뇌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미개척인 상태로 놓은 영역도 많고, 알려진 지식 마저도 종종 뒤집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뇌 연구 결과는 적어도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뇌의 기능을 특정 뇌 부위별로 배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흔히들 알려져 있듯이 두뇌 중 어느 부위는 생각하는 곳, 또 어느 부위는 보는 곳, 움직이는 곳 이런 식으로 어떤 능력과 어떤 뇌 부위가 일대일로 매칭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기능에서나 여러 뇌 부위들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우리는 외부 세계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뇌의 여러 부위가 상호 조합됨으로써 하나의 기능이 구현되기 때문인지,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기능이 사실은 여러 기능의 조합이기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우리 인체의 다른 기관들이-심장이 피를 순환하고 신장이 피를 걸러주는 것처럼 고유의 기능이 있는 것과는 달리 뇌의 각 부위는 하나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현대 뇌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시적으로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용하고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대한 주제에서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하나 하더군요. 바로 뇌 내 정보 전달이 화학 물질에 좌우되는 특성 때문에 뇌와 동등한 컴퓨터를 만드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저 역시 왜 신경정보 전달에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의 존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아주 좋은 설명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만약 신경세포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전기적으로만 신호가 전달되면 더 단순한 구조로 효율적이고 빠르게 신호를 전달했을지도 모르지만, 뇌는 이런 단순함과 효율을 추구하기 보다는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조합의 신경전달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다양성과 융통성을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 인간의 진화 역시 특정 환경에 대한 최적화 보다는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기에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될 수 있었고 현재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회로도와 정해진 알고리즘에 근거하는 현대 컴퓨터 기술이 이런 다양성과 융통성,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나는 창발성을 갖추기는 어렵기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저도 동감하게 됩니다. 아무도 계산 빠르게 하는 컴퓨터는 상상해도 시를 짓는 컴퓨터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뇌의 발달과 기능 구성에 있어서 흥미로웠던 것은 출생 전 급격하게 증가한 뇌 세포들이 출생 이후 연결을 시작하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각인처럼 대부부의 동물은 학습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으며 아예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밍 된 행동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탁월한 융통성으로 인해 학습에 있어서 민감한 시기가 있긴 해도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갖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신체 기능에 있어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기가 여전히 유효한듯 합니다.
아기 때 사소한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2주간 한쪽 눈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이 그 눈을 실명한 사례가 그것인데, 어른의 경우라면 이미 신경의 연결이 확립되어 그런 처치가 문제가 없었겠지만 출생 직후의 아기는 아직 눈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 형성이 수립되지 않았고 바로 그 때가 신경 연결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본 능력에서부터 고차원적인 기억에 이르기까지 신경망의 연결이 대단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낮은 차원의 기본적인 능력일 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이고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 초기 자녀에 대한 양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현대의 뇌 연구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상향식 연구와 하향식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으나 아직 두 연구결과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뇌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독일 서쪽에서 진공하는 연합군과 동쪽에서 진공하고 있는 소련군처럼 언젠가는 엘바강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 엘바강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원리가 살아 숨쉬는 뇌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유혹하지 않을까 합니다.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다시 시작을 준비하며

마지막 글을 올린 것이 2007년 하반기, 그리고 나서 2년이 지났내요.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생명유지장치를 단 말기암 환자 처럼 고통스럽게 겨우겨우 유지하던 일 속에 지쳐가다가 포위당해서 몰려 오는 적군 앞에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란 심정으로 역습을 시도하는 게티스버그의 북군처럼 정말 용기를 내어 그간 해오던 일을 접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2008년. 믿어주시는 많은 분들의 응원 덕에 겨우 역습은 성공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동안 정말 이 블로그로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네요.

어차피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넷 상에 자신을 개방하는데 능숙하지 못한 편이라 잘 안될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보다는 내가 쓰는 글 하나하나에 너무 긴장하는 편이죠. 그러니 쉽게 지치는 것이고.

그래서 블로그 성격을 좀 바꿀려고 해요.
혼자서 너무 긴장하고 뻣뻣하게 구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구요. 여튼,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좀 더 여러가지 주제로 소소하게 다시 블로깅을 다시 시작할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