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무한도전 뉴욕 특집을 보며

 무한도전 뉴욕 특집 1편이 나가자 미국 물 좀 먹고 와서 영어강사 한다는 사람이 거친 어조로 그들을 씹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그 주장의 개요는 영어도 못하면서 왜 미국에는 가서 나라 망신을 시키느냐는 거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의견을 놓고 갑론을박을 했고 광고 지면 이외의 빈칸을 채워야 하는, 늘 가쉽거리에 목 마른 기자들이 여기에 밥숟가락 얹어 놓으며 가쉽거리가 되다가 언제나처럼, 언제그랬냐는 듯이 그 논쟁은 잊혀져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한번으로 끝난, 끝날 에피소드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어리석은 국민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소위 좀 배웠네 하는 자들 일부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무엇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건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먼저 나는 왜 그 영어강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지, 무한도전을 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

 문득 명박정권의 정권인수위에서 활약하셨다는 명문 여자대학교 총장님의 "오륀지" 사건이 생각난다. 오렌지라고 하니 미국 사람들이 알아듣지못하고 오륀지로 말해야 미국 사람들이 알아듣더라는 이 양반이나 좋은 영어 발음을 위해 어린 자식의 혀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는 부모나 산수 문제 푸는 데 국어 사전 펴들고 앉아 있는 꼴이다.

 이미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 사용 인구가 영어권 국가의 영어 사용자보다 더 많아졌으며, 비 영어권 사람이 정통 영어와는 다르게 말하고 이런 언어경향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정통' 영어를 쓰도록 요구만 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어권 국가에서 이제 그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신문에서 읽은 기억에 의존해서 하는 말이라 비록 이 의견이 영국 내 소수의견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거론된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없다. 갑갑하면 직접 찾아봐라. 여튼 중요한 것은 심지어 영어 종주국에서도 "내가 원조니 나 하는대로 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쓴다면 많이 사용되는 방향으로 따라가야 되지 않겠냐는 성찰을 보이는데 왜 한국의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은 오리지널 정통에 그다지도 집착하느냔 말이다. 유연성 없이 딱 배운대로 시키는 대로 하려고 드는 것을 티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언어의 기본적인 역활은 의사소통이다.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으면 되는 거지 왜 문법 생각하고 발음 생각하면서 꼬고 비틀어야 한단 말인가? 아! 하긴 그래야 영어 가르쳐 밥 먹고 살지. 쉬우면 누가 학원 오려고 하겠어?

 그리고 무한도전의 행태가 창피하다고 했는데 왜 창피할까? 미국인들에게 무시당해서? 자, 그럼 한국을 여행온 미국인이 한국말을 모른다고 당신들은 무시할 것인가? 아니다. 아마 당신들은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본토 발음으로 친철히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마 흔히들 말하는 동남아시아인이 어설픈 한국어로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아마 당신은 십중팔구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고 생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미국인이 고향에서는 직장도 잡지 못하고 반백수로 빈둥거리다 한국에 원어민 강사가 되기 위해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동남아 사람이 알고보니 한국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해당 국가의 고위 차관이라면? 그리고 그 차관이 어느 한국인이게 불법체류 노동자 취급을 당해 불쾌했다고 하자.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 어디가도 매너 없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못난 인간은 있는 것이다.

나는 피자를 집어던지던 맥잡의 미국인에게 무시당한 것 보다는 거리에서 무한도전 맴버가 나 영어 잘 못한다고 하니까 괜찮다, 나도 한국말 모른다라고 대답한 그 미국인을 더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들로써 미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뭐, 그건 그렇고 본토 원어민도 괜찮다는데 왜 원어민 강사도 아닌 학원 선생이 영어 못한다고 떽떽 거리나? 하는 짓이 영어 못한다고 사람 무시하고 피자 집어 던지던 맥잡 짓과 똑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창피해 해야하는가?  나는 그것이 감히 사대주의라고 본다. 명이 무너지자 유학의 정통은 자신들이 이었다며 스스로를 소중화로 일컫으며 몰락한 명황실을 위한 제사까지 지냈던 골수 사대주의자들! 아마 원어민이 오렌지라고 말하면 검지 손가락 좌우로 까딱거리며 오륀지라고 고쳐주면서 이젠 정통 영어의 정통은 소아메리카가 잇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사는 한국인 중 대부분이 인니어를 배우는데 영어만큼 극성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설프나마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 나라 말을 하고 또 이곳 사람들도 눈치껏 알아서 응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 현지인들을 무시한다면 잘못된 것이겠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서로 눈치껏 의사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수는 있다. 이곳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그걸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같은데 미국이라고 다르겠나? 미국에서도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사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는 걸 보면 마찬가지이다. 근데 왜 그렇게 팍팍하게 구는 거냐? 아! 하긴 쉬운거고 쉽게 갈 수 있는 거라면 누가 돈 내고 배우겠어? 어렵고 힘든 거라야 돈 내고 배우지.

 제발 오리지널, 정통 이딴 걸로 사람 현혹하지 말자. 꼭 그렇게 맞춰 살아야 하나? 공부 많이하고 어느 한 쪽으로 잘하시는 분들 잘났고 잘하는 건 알겠는데, 모두가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않느냐. 그래야 그쪽도 할 일이 있는 것이고. 정말 그런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 소용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잘하고 매끄럽게 잘 할거면 왜 미국까지 가서 무한도전 찍나? 그냥 한국에서 찍지. 잘못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도전이 되는 거고, 그래서 재미가 있는 거다. 개그맨이 말장난으로 웃기는 데 그걸 하지말라면 도대체 뭘 하란 건가? 정극 드라마라도 찍으란 거냔 말이다.

추신. 뉴욕 한국 음식 특집 마지막에 비틀즈를 흉내낸 공연은 올해 무한도전의 백미 중에 백미라고 난 생각한다. 자신에게 겨눠진 비난마저도 비틀어 웃음의 소재로 삼는 이들은 진정한 코미디언이다! 나도 이제 무도빠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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