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8일 목요일

바닥나는 밑천

자녀의 성공을 위해 라는 제목의 일련의 글을 그리 깊지 않은 지식으로도 그 동안 거의 매일이다시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써 놓은 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바닥이 드러나니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쥐어짜내느라 점점 글을 올리는 주기가 늘어나기 시작하는군요.

그 사이에 넋두리 같은 잡설이나 하나 풀어 놓아 봅니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면서 한가지 흥미있는 주제가 생겼습니다. 아직 사례수가 충분치 않아 충분한 사례 축적과 함께 통계적 검증 작업이 필요하지만 일단 첫번째 가설은 "해외에서 성장한 한인 어린이, 청소년은 K-WISC3의 언어성 지능이 떨어진다" 입니다. K-WISC3 자체가 한국어판으로 재표준화 된 검사이므로 언어성 지능은 한국어 사용 능력을 전제로 한 지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작성 지능에 비해 아무래도 해외에서 성장한 한인 자녀에게는 불리할 수 있으며 지수 점수 상으로는 실제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문제는 한국어에 기반한 검사였기에 본신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한국어 사용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은 거기까지 밖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가설이 검증되면 당연히 두가지로 분기가 되겠죠

먼저 가설이 틀렸다. 즉,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인니에서 자란 아이들 간의 모국어 사용 능력의 차이가 없다로 드러나면 조금 심심해지긴 할 것 같습니다. 경험적으로 보고되는 이곳 한국 아이들의 행동 특징 -보통 인니 거주 한인 학부모님들은 여기서 성장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성장한 아이들에 비해 '느리다'고 평가합니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 가설을 보다 세분화시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니 거주 년수와 어느 연령대일 때 인니에서 성장했느냐는 양적인 접근과 함께 어떤 훈육 환경에서 성장하였느냐는 질적인 접근이 바로 그것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거주 년수와 연령대도 중요하지만 초기 언어 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랄 수 있는 3~7세 무렵의 질적인 환경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우선 충분한 사례축적을 통한 첫번째 가설 검증 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튼, 양적인 특성으로 나눈 그룹에서 어느 정도의 언어성 지능의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그 차이는 실질적인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이쪽에서는 두번째 분기점이 되겠군요.

그 다음, 만약 가설이 옳았다. 즉,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인니에서 자란 아이들 간의 모국어 사용 능력에 차이가 있다고 드러난다면 조금 더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당연히 가설이 틀렸을 때 따르는 후속 검증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이 보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언어성 지능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인니가 갖는 환경적 특성-한국어 환경의 결핍-과 격리된 이중언어 환경에 의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어 환경이란 시각적 청각적 한국어 자극에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길 거리만 나서도 한국어 간판에 한국어 소리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그러나 인니에서는 그렇지가 않죠. 이 보이지 않는 환경의 효과는 마치 공기의 소중함과도 같습니다.

격리된 이중언어 환경이란 쉽게 말해 집에서는 한국어를 학교에서는 영어를, 친구들과는 인니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양한 언어 학습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이중언어환경은 모든 장면에서 두가지 이상의 언어가 적절하게 사용되는 환경을 의미하므로 격리된 이중언어환경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더 많은 물질적, 정신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한국어 환경의 결핍은 비교적 일정하게 인니에서 성장한 한국 아이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반면, 격리된 이중언어환경은 개인별로 상이하며 그 영향도 다양할 것으로 보아집니다. 따라서 이를 집단별로 나누고 그 차이를 확인해보는 것이 이쪽의 두번째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런 한국어 환경의 결핍를 어떻게 상쇄하고 모국어 사용 능력을 강화 시켜 줄 것인가하는 대안이 이쪽 가지의 열매가 되겠군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만 뭐 아직은 러프한 아이디어 수준일 뿐입니다. 이미 누군가가 연구해 보았을 일을, 알고 있는 지식일지도 모르는데 헛발질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어찌되었던 나무 가지가 햋볕을 향해 뻗어 나가듯이 가설이 어느쪽 가지로 분기해 가던 최종적으로 뻗어나갈 방향은 언어 발달(환경의) 차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입니다.

식재료가 많다고 해서 적은 쪽 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가 자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의 양이 더 많다고 해서 반드시 자녀가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똑같은 식재료를 가지고서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듯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선택과 배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성장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어느정도 수준 이상의 교육적 기회가 두루 갖춰진 현대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당연히 양 보다는 질이 중요하겠지만 그 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 많은, 더 특별한 교육 기회일까요?

글쎄요...

당신의 생각은, 그리고 선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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