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7일 토요일
조선족 그리고 코메리칸
예전에 제가 일하는 회사의 물류센터에는 조선족 부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번 돈으로 이미 고향에 슈퍼 마켓과 아파트까지 두채 가지고 있다는 자랑을 듣고는 그의 코리안 드림이 성공한 것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 한국과 중국이 축구를 하면 자긴 중국팀 응원한다면서 대국의 국민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래도 동포라고 생각했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느니 따위의 순진한 분개라기 보다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본 탐험가처럼 신기했다고나 할까요?
어차피 축구는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도 관심없어 하는 편이라 누가 누굴 응원하건 말건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고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그냥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타자에 대한 배척과 우월감 덩어리인 중화사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인데, 그 대국이란 말을 화족도 아닌 조선족에게서 들으니 좀 인상이 깊게 남았나 봅니다.
이후로 시간이 지날 수록 조선족을 짝퉁 짱께니 뭐니 하면서 비하하는 한국인들을 점점 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많은 한국인들이 조선족의 이중적인 태도-권리를 주장할 때는 동포를 내세우고 의무에 대해서는 중국인임을 내세우는-를 이야기 하면서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사람들로 비난합니다. 자기 아쉬워 한국에 왔으면서도 중국이 한국보다 큰 나라라며 한국을 우습게 여긴다고 분개합니다. 중국인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조선족을 한국인이 동포로 생각하고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까지 말합니다.
정체감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지식과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체감은 후천적인 것이며 이는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성장한 조선족에게 한국인의 정체감을 가지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행위와 사실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자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너희도 한국인인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이건 배신이다. 그래서 너희 보다 차라리 외국인이 더 낫다는 식의 감정적 대응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자라나서 그렇게 가진 정체감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와는 비교되는 다른 사례를 하나 꼽아 보고 싶군요. 사실은 이 기사를 보고나서 조선족 경우가 떠올랐고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그런데 지난 27일 동아일보에 난, '코리안 아메리칸 200만 시대…교포사회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요, 이 기사 말미가 아주 대미를 장식하더군요.
포트리라는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인 비율이 높아져서 지역 교육청에서 초등학생 희망자에 한해 영어와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중언어교육 시범 실시를 논의했다고 하는데 한인 학부모는 물론 다른 민족 학부모도 반대해서 이중언어교육이 실시되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언어는 문화이자 사고이며 정체감 형성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다민족 국가 미국에서 당당히 주류 언어의 하나로 키울 생각은 고사하고 주어지는 기회도 앞장서서 마다하는 것을 보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다른 타당한 이유도 있으리라 기대도 품어보지만 아마 십중 팔구는 아이들 영어 학습에 방해된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봐야 미국인들이라면 거지도 하는 영어 하나 제대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그러면서 잃는 것이 무엇인지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짝퉁 짱께와 코메리칸,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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